2014. 3. 9. 05:51

자가노스와 바야짓은 정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바야짓 뿐 아니라 자가노스에게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무엇이 둘을 이렇게 묶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서로 당분간 이 관계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1년에 두어번 밖에 만나지 않으면서도 섹슈얼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자가노스는 장거리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얻은 셈이었고 신관은 뜻을 관철할 도구를 얻은 셈이었다.


최근 도성 내 소문이 흉흉하다. 장국 무즈라크의 술탄이 친동생을 품는다 한다. 어찌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지 하렘에 발길이 끊긴지 오래이더라.
장제는 루머를 듣고 입술을 떨었다. 친형제 간 동성애라니 사상 최악의 스캔들이었다.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소문이 파다한데도 술탄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압박인건가.
일단 바야짓은 서둘러 자가노스에게 전보를 쳤다. 애초에 신뢰받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 의심많은 사람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물의 신전에는 자신과 외향이 비슷한 시동을 세운 후, 바야짓은 서둘러 장국으로 향했다.

자가노스는 톡 톡 검지로 책상을 두들겼다. 악의적인 소문에 불쾌해야 할 이유야 있었지만 사실 자신은 침착했다. 이런 소문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술탄과 장제, 두 사람의 사이는 정상적인 형제 관계가 아니었다. 어쨌건 장제가 굳이 국경을 넘어 해명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이미 국경을 넘어올 자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소문이 거짓임을 반증하는 것이겠지. 자가노스는 자택에 사람을 몰리고 밤에 찾아올 손님을 기다렸다.

사막의 밤은 쌀쌀하다. 바야짓은 한숨을 쉬며 몇 달만에 찾아온 정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리웠던 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풀어졌다.

"보고싶었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건가, 장제." 

바야짓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가노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불쾌했구나. 

"소문에 대해서라면, 거짓입니다."
"알고 있다." 
"그런 것 치고는 미행이 붙었던데." 
"보험은 많을 수록 좋지."

그것이 당신의 말버릇이었지요. 바야짓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가노스는 봐도봐도 적응이 안되는 미모의 정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차를 들이켰다.

"저는 신뢰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있겠나. 나는 누구도 무엇도 믿지 않아."
"제게 붙인 미행은 형님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시겠지요."

자가노스는 형님이라는 말에 인상을 썼다. 술탄 바라반. 머리아픈 상대였다. 애초에 신관에 대한 친형의 집착은 장난이 아니었다. 자가노스는 살을 섞은 첫날 신관이 성경험이 없었다는걸 확인했을 때 물의 정령이 가호하셨군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형제애? 어느 형이 동생의 몸을 훑으면서 본단 말인가. 자가노스는 술탄이 장제의 초상화를 몇십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에 기함을 했다. 그 행위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알려져도 상관 없다는 태도도 기가 막히다.

"어쨌건 저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바야짓은 자가노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가노스는 이 형제의 문제는, 술탄 뿐 아니라 장제 본인에게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제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남성성을 억누른 행동가짐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가학심을 가지게 한다. 상당한 미인인 장희의 옆에 있어도 기죽지 않는 그의 미모도 남심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겠지만, 남색가들의 입에서 장제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성직자 같은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이 분명했다.
안되겠다. 오늘의 자신은 역시 냉정하지 못하다. 자가노스는 침착을 잃은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고 고개를 몇번 좌우로 흔들었다.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을지도 모른다."
"잠깐, 제 눈을 보십시오." 

바야짓이 자가노스의 손목을 잡았다. 

"소문에 마음 상하신 것 압니다." 
"하? 마음이 상해? 그깟 소문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내 심기가 거슬린단게냐." 
"어쨌건 자신이 품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밤을 보냈다는 소문이 났는데,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잖습니까."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자가노스는 부정할 수는 없었다. 가슴안에서 흉흉하게 소용돌이 치는 것이 정체를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장제께서는 내가 질투심이라도 느낀다는 것인가."
"네."

바야짓은 확신했다. 자가노스의 미간이 찌부려졌다.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자가노스를 대신해, 바야짓이 천천히 자가노스가 자신도 모르게 꽉 쥔 손을 잡았다.
바야짓은 자가노스의 주먹을 들어올려, 천천히 자신의 볼에 대었다. 자가노스의 손이 약간 떨렸지만, 곧 손가락이 빠져나와 바야짓의 볼을 만졌다. 

"당신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정치 속의 약속 뿐 아니라, 정인으로서 믿음까지 드리기 위해."

자가노스는 거칠게 손을 뺐다. 부드러운 온기가 기분나빴다.
이 남자는 늘 이렇다. 그냥 체스말이면 체스말 답게 잠자코 판 위에서 춤을 추면 될 일이다. 아니면 판을 거절하고 언젠가 자신의 간계 위에서 제거되던지. 그것이면 된다.
마치 무엇이고 바칠 것처럼 둘 개인적 감상을 보여줄 이유는 없었다. 자가노스는 수많은 보고를 떠올렸다. -술탄이 장제에게 술을 따르게 했습니다. 술탄이 장제를 희롱하였고 장제는 그것을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장제가 늦은 밤 술탄에게 불려갔습니다. 술탄이 장제를 데리고 먼 곳으로 갔습니다. 장제가 술탄을 보는 눈이 여전히 친애가 가득합니다. - 

자가노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당장 그 어느 밤 취했던 때처럼 신관의 옷을 망가뜨려 품에 안고 싶었다. 하지만 술이 없었다.
자가노스는 어금니를 씹었다. 아무것도 이 남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도 못한채 자가노스는 바야짓을 노려보았다. 

"하나만 물어보지. 형을 죽일 수 있겠나."
"네?"
"필요하다면 당신의 손으로 형을 살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건."

바야짓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바야짓은 작은 소리로 형님께서 정말로 이대로 뜻을 꺾지 않는다면.. 하고 뒷 말은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자가노스는 실망감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고 뒤를 돌았다. 바야짓은 다급히 자가노스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가노스는 의아한 얼굴로 바야짓을 보았다. 

"무슨 이유인가?" 
"전 당신에게 확신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증명할 텐가?" 

바야짓은 자가노스에게 단호히 말했다. 

"제 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겨 주십시오."

자가노스는 바늘과 잉크, 소독을 위한 램프를 준비했다. 문신은 드문 양식은 아니었다. 단지 장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용도 아니었다. 언젠가 장제에게 어떤 지방의 노예제도에 대해 말했을 때 몸에 상처를 내고, 염료를 사용하여 문신을 남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바야짓은 얇은 옷감을 걸치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자가노스가 바늘을 불에 달구어 소독한 후, 바야짓에게 다가가자 그제서야 겁을 먹은 듯 몸을 움추렸다.

"부위는?" 
"자, 장군이 결정해 주십시오."

자가노스가 바야짓의 목 쪽으로 손을 뻗자 바야짓이 퍼드득 놀라며 몸을 움추렸다. 
옷감을 쥐고 어깨로 넘기자 얇은 실크 재질이었던 그것은 스르르 뒤로 넘어가, 새얀 신관의 나신이 드러났다. 바야짓의 몸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가노스는 아까의 불쾌한 기분을 잊고, 바야짓의 피부 위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덧그렸다. 팔의 라인을 한번 타고 내려가, 다시 등 쪽으로 올라가 견갑골 부위에서 검지를 뱅글뱅글 돌렸다. 

옆구리를 쓰다듬자 하윽 소리와 함께 바야짓이 앞으로 웅크러 드렸다. 참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뜨리자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팽팽하게 선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자가노스는 바야짓의 귀에 대고 음란한 말을 지껄였다. 바야짓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자가노스는 참지 못하고 바야짓의 하반신을 풀어해치고 해후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사로 지친 바야짓과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문신은 깊숙한 쪽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물의 신관이기에 의식상 물에 몸을 담근다던가 시종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는 것이 흔했기에, 치골 위쪽 부위에 작은 삼각형 두개를 그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마취약을 사용할 테지만 기본적으로 바늘을 이용한 시술이기에 고통스러울 수 있다."

바야짓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가노스가 준비한 진통제를 먹은 후, 입에 옷감을 문채 침대 위에 바로 누었다.
자가노스는 자신의 침대 위에 거의 전라로 누워있는 왕손을 바라보았다. 온 몸엔 자신이 안았던 흔적이 가득하고, 허벅지 사이에선 자신이 흩뿌린 정액이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가노스는 떠오르는 정복감을 무시하고 천천히 바야짓의 살갗에 바늘을 꽂아넣었다.

"...!!"

바야짓의 몸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자가노스는 경직되었다 풀어지는 근육을 세심히 관찰하며 바야짓이 적응하는 시간에 맞춰 조각을 세기기 시작했다.
살을 균일한 깊이로 꿰뚫는다. 치골과 가까운 얇은 부위의 피부를 찌르자 바야짓이 참기 힘든지 매트를 손이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그러쥐었다.

"하..."

금방 바야짓과 자가노스 양쪽 모두 몸이 흠뻑 젖었다. 마침내 위쪽의 삼각형을 완성하고 바야짓을 바라보니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제사장에게 바쳐진 양 같군. 자신이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자가노스는 자신도 모르게 상냥하게 바야짓의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바야짓은 자가노스를 바라보았다. 너무 아팠다. 뱃속까지 불로 지지는 것 같았다.
비슷한 부위를 몇번이고 찔러 이제 감각이 없어질 만도 한데도 바늘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찔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만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알고 있을까? 자가노스 장군은 지독하게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어쩌면, 자신의 형님에게서 자주 보았던 표정과도 닮아있었다.

마침내 문신이 완성된 순간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하고 바야짓은 혼절했다.
자가노스는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고귀한 신관을 바라보았다. 
눈물과 땀과 피와 정액으로 덮여진 이 아름다운 인간이 신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얇은 피부위에 새겨진 문신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이 남자의 소유가 자신임을 외치고 있었다. 

치솟는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가노스는 자신이 새긴 상처에 입을 맞췄다.









모처에서 리퀘를 받고 썼는데 우와우아우아아아 완전히 취향이었습니다 하악하악

Posted by Karin(카린)
2014. 3. 9. 05:48
어렸을 때 바야짓과 바라반은 그저 우애가 좋은 형제 사이었다. 의례 왕정에는 혈육간에도 살벌한 왕위 다툼이 있었으나 바라반은 천성이 왕이엇고 바야짓은 타고나길 겸허한 현자였다.  이 어찌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사람들은 두 형제를 칭찬했으며, 그것은 또한 바야짓의 자랑이었다.

"바라반,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 일컷는지 아느냐."
"무엇이라 하더이까."
"네가 날 좋아하는게 너무 티 난다 하더라. 넌 욕심도 없느냐."
"제가 당신을 따르는 것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입니다."

그러느냐. 넌 좋은 아우구나. 바라반은 웃으며 바야반은 동생의 곱슬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바야짓은 바야반의 손등에 제 손을 포개었다. 형님이 너무 좋아,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문득 바야짓은 이 존경심을 표현할 좋은 수단을 생각해냈다. 언젠가, 아버지가 아끼는 신하가 아버지에게 예를 표하기 위에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본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와 그 충신의 유대는 가족이나 부부의 연보다 강해보였다.

"형님. 제가 잠시, 당신의 동생이 아니어도 괜찮겠습니까."

바야짓은 바야반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어, 그의 손등의 자신의 입술을 대었다.

 "저의 길은 당신을 향해 있으며, 저의 몸은 당신을 위해 살 것이며, 저의 혼은 당신을 위해 죽을것입니다."

바라반은 마치 왕족이 아닌 자처럼 자신에게 인사하는 바야짓을 껴안았다.

"바야짓, 내 유일한 아우이자, 내 가장 충실한 신하될자여,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무엇이든지 형님이 원하는 바를 말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것을 허가한다."

바야짓은 기꺼이 고백했다. 그 때는 그 말이 그렇게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났다. 그렇게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바라반과 바야짓은 한 피를 받은 자식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체구가 차이가 났다.
바야짓은 16세가 되었는데도, 성적 발달이 늦되었다.
어느날 밤 바야짓은, 바라반의 방에 자신의 책을 놔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 자신을 아껴주는 스승에게 돌려주기로 한 귀중한 문서인데, 곤란했다. 바야짓은 서둘러 바라반의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 누구 없는가."
"바야짓 왕자님."
"방해해서 미안하네. 형님이 아직 주무시지 않는다면, 잠깐 형님의 방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놓고 온 것이 있어."
"곤...곤란합니다, 바야짓 왕자님."

바야짓은 당황했다. 물론 자신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바라반이 있으니 거의 없는 것이긴 하나, 엄연히 자신은 술탄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청이 거절당하다니? 바야짓은 재차 시녀에게 물었다.

"곤란하다니, 형님의 명령이 있었나?"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시라면 제가 전언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바라반이 바야짓의 방문을 거절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혹시, 형님이 아프신걸까? 바야짓은 걱정이 되었다.

"역시 내가 형님의 방에 가봐야 겠다."
"바야짓님!!"

시녀는 절박하게 외치며 바야짓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바야짓은 당황해서 발길을 멈추었다.
시녀는 왕자에게 거역한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차세대의 술탄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 목숨을 걸고 바야짓을 말렸다.

"바라반님은 지금.. 침소에 혼자 있지 아니하십니다."

바야짓은 순간 시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자, 바야짓은 충격을 받았다.





바야짓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에 돌아갔다. 
아무리 순진한 바야짓이라도 지금 바라반이 누군가와 잠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성적으로 늦된 편이지만, 형님은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사람이니 마음에 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설사 애인이 아니더라도 술탄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후궁을 취할 자격이 있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 처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어지러웠다. 엎드려 빌었던 시녀의 얼굴도 제법 예쁘장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녀도 형님과 잤을까?

바라반은 털썩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고 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바라반님은 지금 침소에 혼자 있지 아니하십니다, 바라반 님은 지금 침소에 혼자 있지 아니하십니다, 바라반 님은 지금...

"..."

눈물이 안쪽부터 차올랐다. 안구가 뜨거워졌다. 눈가를 따라 주르륵, 슬픔이 흘러내렸다.
왜 몰랐나. 나는 바보인가. 상상도 못했나. 왜 이렇게 됬나. 어째서 우나. 형님이 아무렴 나만 예뻐라 하실거라 생각했나. 자신도 형님도 언젠가 사랑을 하고 여인을 안고 자식을 만드리란걸 몰랐던건가.

"....욱..."

그런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걸까. 바야짓은 그날 아무런 소리없이 두 식경 가량을 울었다. 
그날, 바야짓은 처음으로 몽정했다.



바라반은 최근,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 동생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사이가 좋았기에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바야짓은 오늘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했나."
"네, 바라반님. 실례지만 바야짓 님은 급한 일이 있어 궁성 밖으로 나간다 말하셨습니다."

이게 몇번째야. 한 두 끼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요즘 자신의 방에 전혀 찾아오지 않은지 2주가 되어간다.
형님, 앞으로 형님이 술탄이 되신다면 이런 정책은 어떠하신지요, 이 병법이 쓸만할 것 같습니다 조잘대던 대화가 끊긴지도 오래되었다.
설마. 바라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에 품은 여인이라도 생겼나. 그러고 보니 바야짓도 어연 17세였다. 
하지만 바야짓에게 붙인 밀정에게선, 어떤 정보도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이냐. 왜 네 멋대로 돌아다니는거야. 바라반은 불쾌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산책이라는 핑계로 형과의 만남을 피하고 있던 바라반은, 형님의 황당한 명령에 아연실색했다.

"제 방을 형님과 합친다구요?"
"네. 최근에 고민이 많아 보이셔서, 좀 위로가 필요하시다고 합니다."

바야짓은 얼굴에 핏기가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거의 매일밤 바야짓은 음몽을 꾸었다. 처음엔 꿈 속에 형님이 자신을 꽉 끌어안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꿈에서 자신은 마치 더 애정을 갈구하듯히 형님에게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러면 형님은 자신이 유혹하는 대로 입을 맞추어 주었다... 말도 안될 일이었다. 들키면 아버님에게 추궁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형님에게 경멸받을거다. 이 세상에 어떤 동생이 제 피를 나눈 형님의 사랑을 갈구한단 말인가. 그 뿐 아니다. 자신을 경계하여 형이 술탄에 오른 직후, 자신을 궁 밖으로 내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도 이제 성인인데, 형님이 그렇게 신경쓰실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라반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야짓 님이십니다."

거짓말! 바야짓은 바라반이 침소로 끌고 들어간 여자의 수가 이미 자신의 양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형님과 제가 지나치게 친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건은 도가 지나칩니다."
"하지만 바라반 님의 명령이신데..."

이건 거절할 수밖에 없다. 형님과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낸다면, 이 마음을 들킬 지도 모른다. 마음을 숨길 수 있다 하더라도, 아침마다 제 형에게 안겨 신음하는 꿈을 꾸고 앞섶을 더럽히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 때가 온다면 수치심에 혀를 깨물고 자결할 거다.

"제가 직접 거절하러 가겠습니다."

바야짓은 괴로워 하면서도 오랫만에 형님을 만나게 됬다는 것이 너무나 설레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이 자신이 보기에도 우스꽝 스러웠다.

"바라반 왕자님. 바야짓 님이 오셨습니다."

이제야 왔나. 바라반은 엄한 목소리로 들어오도록, 이라고 말했다. 무려 몇 주만에 만나는 동생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적이 없었다. 바라반은 동생을 심하게 꾸중하려 했지만, 바야짓의 얼굴을 보고 순간 숨을 집어 삼켰다. 
굳이 말하자면 바야짓은, 남자로서는 일국 제일의 미남이었다. 그런 그의 꽃처럼 화사하던 얼굴은, 이루 말할수 없이 그늘이 져 있었다. 바라반이 바야짓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보드랍던 피부가 까슬하니 메말라 있었다.

"바야짓, 혹시 몸이 안좋았느냐. 얼굴이 상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던 바야짓이 고개를 들어 바라반과 눈을 마주쳤다. 
괴로움에 비뚤어진 동생의 모습은, 제 혈육이라 믿을수 없을 정도로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형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바라반은 바야짓의 갈라진 입술이 달짝이는 것을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바라반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취했기에, 바야짓이 제 동생이 아니면 몇번이고 안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바야짓의 외모는 기억하던 것 보다도 절색이었다. 내 동생이, 이런 표정을 하던 아이였나? 이런 목소리로 떨던 자였나? 맙소사, 전신이 바르르 떨려 부서질것 같은 자신의 동생은 너무나도 가냘프고, 안타까웠으며, 아름다웠다. 마치 실에 매달아 고정시킨 나비같았았다. 
바라반은 자신의 하반신에 열이 뻗치는 것을 느꼈다.
아득한 사랑스러움에 바라반은 바야짓을 와락 껴안았다. 바야짓의 어깨는 작았지만, 자신이 품었던 여인들보다는 단단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꽉 들어차는 몸이었다. 바라반은 동생을 껴안는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바라반은 깨달았다. 그런가. 내가 원한 상대가 너였나.

 "아니다. 괴로웠던 듯 하구나."

바라반은 바야짓을 변하게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지 ? 누구냐? 왜 말을 하지 않았냐. 왜 내 허락을 받지 않고 네 마음을 빼앗겼느냐. 감히, 나를 두고. 마음을 자각하자 마자 독점욕에 미칠것 같았다.

 "말해. 누구 때문에 괴로워했어."

바라반은 바야짓의 어깨를 와드득, 움켜쥐었다. 바야짓은 고통에 허덕였다.
바야짓은 차마 형님을 연모하여 괴로웠다고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쩌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제, 제가 있을 곳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걸 왜 생각해."

바라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야짓을 쳐다보았다. 이 나라의 엄연한 제 2 왕위 계승자가, 무슨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형님은 요즘 형님의 혼사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알다마다. 맘에 드는 상대가 없어 고르고 있었지. 바라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 아니고 제 동생의 반만큼만 예쁘고 똑똑하고 성품 좋고 충성심 강한 여인을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반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모르던 바는 아니었다. 어쨌건 바야짓도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전 가정을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하면 된다."

바라반은 바로 대답했다. 동생이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나 전전 긍긍했는데, 도리어 결혼할 생각이 없다니 매우 잘됬다.
바라반은 며칠간의 짜증이 한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넌 후계의 책무에 얽메여 있는 몸도 아니니 결혼을 하여 자식을 보건, 네 혼자 살건 그 누구도 널 탓할 수 없다. 내가 탓하게 두지도 않을거다."

바야짓은 형이 호언장담을 하자 그제야 베시시 웃었다. 확실히 형인 바라반은 자신의 일이라면 끔찍하게 위했다. 조금 비약해서 말한다면, 혹시 바야짓을 모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라반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녀석의 혀를 뽑으라 할테지. 
이렇게 자신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눈물이 차올랐다.

 "...바야짓?"

바라반은 당황했다.

"바야짓, 어째서 눈물을 보이느냐."
"형님. 저도 이제 성인이고, 제 갈 곳을 정했습니다."

형의 앞이라 그만 울고 싶었지만 사실 계속 울면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당신이 내 삶의 이유였다.그래, 작별을 할 때다. 

"형님. 저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정결한 몸으로 살까 합니다."

그것이 가능이나 할까. 대체 침대위에서 형의 이름을 부르며 혼자 음란한 망상에 빠져있던 것이 누구냐. 이런 자신에게 내릴 신따위는 없다. 
왜 나는 이렇게 자라난 걸까.
알수 없었다. 태어나길 분명 자신은 그런 생물이 아니었다. 형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은 이미 자신의 그릇된 욕망으로 더럽혀졌다.

"형님, 저는 물의 정령을 받겠습니다."
"신관이 되겠다고? 너, 제정신이냐?"

신관.
그들은 일생 부정을 타서는 안된다.
말을 조심하라. 먹는 것을 조심하라. 입는 것을 조심하라. 
눈길을 조심하고, 손길을 피하며, 음욕을 피하고, 사욕을 피하라.
 걷는 걸음을 경거히 내딛지 말며, 움직임을 망령되이 놀리지 말라.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라. 버리고 버리고 버려라.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인간이, 일생을 시체같이 살리라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형님, 제가 그곳으로 가는게 형님에게도 좋지 않겠습니까."
"날 우습게 보는거냐 바야짓!!!"

바라반의 노성이 방을 울렸다.

"넌 네가 스스로 무덤속으로 걸어가야만 내가 술탄이 되겠다고 말하는거냐!! 나 바라반이 너에게 그렇게 밖에 안되는 한심한 후계지인것이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형님, 그게 아닙니다."
"누구야! 어떤 놈이 널 협박했지! 그런게 틀림없다!!"

분명히 자신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대신이 자신의 마음약한 동생을 꼬셔낸게 틀림없다. 바야짓을 술탄으로 올리게 힘을 보탠다고 했겠지.
바야짓은 자신의 존재가 바라반의 후계자 자리를 위협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신관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선택지를 고른게 틀림없다.
바라반은 화를 참을수 없었다. 어떤 자식이야. 당장 요절을 내주마. 가루를 내마. 감히 내 동생을 협박해? 감히 나와 내 동생을 이간질해? 감히 내 동생을 이렇게 괴롭게해?

"거기 누구 없느냐!!!"
"형님, 진정하세요, 아닙니다, 오해에요 형님, 형님..!!"
"놔!! 바야짓, 네가 혼자 그런 생각을 했을리 없다! 누구야, 죽일거다, 죽여버리겠어!!"
"모든건 저 혼자 생각한 것입니다!!!"

바야짓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뭐?"
"궁을 떠나는건 저 혼자 결정했습니다!"

네가 왜? 이건 내가 아는 동생이 맞는가? 나와 한 배에 태어나, 평생을 살을 부대끼며 자란 나의 형제가 맞는가? 내 부모보다도 소중한 네가 맞는가?

"저도 이제 성인입니다. 형님... 이제 숨막힙니다, 이상해요, 저흰.. 너무 친밀했잖습니까."

바야짓은 말하는 내내 심장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바야짓의 말투는 차츰 고요해졌다.

"저도 이제 형님에게 독립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바야짓은 웃었다. 그건 바야짓의 눈물보다 슬픈 표정이었다. 바라반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무언가 원할 필요도 없었기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순간 바라반은 태어나 처음으로, [결핍]을 느꼈다.
그렇기에 바라반은 현재 정확하게 자신의 심정을 묘사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참동안 침묵했는데도 바야짓은 자리를 뜨지 않고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야짓이 떠난다. 내 동생이 이제 궁에 없다. 아마 앞으로 만나기 힘들것 같다. 

"바야짓, 난 지금..."

바라반은 겨우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어."




바야짓의 눈이 충격으로 크게 커졌다. 바야짓은 그제서야 자신의 그저 자신의 감정에 허우적 거리느라 형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바라반을 괴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바야짓은 감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가."

이게 현실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떠난다고 했는데 형이 자신을 버리는 것 같았다.
어쩌지? 어쩌지?
이렇게 끝나는거야? 이렇게 슬프게?
외롭다. 무서워. 끝났다. 끝나버렸다.  눈은 무언가 보고 있는데 뇌가 까매서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바라반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넌 이제 날 사랑하지 않아."

그때 바야짓은 폭발했다. 바야짓은 바라반에게 달려갔다. 자신의 애틋한 사람을 껴안았다. 바라반도 힘차게 바야짓을 껴안았다. 
바라반은 비통하게 외쳤다. 넌 날 버리면 안되! 바야짓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라반은 협박하듯 애원했다. 네가 떠난다면 죽여버릴꺼야.바라반은 웃었다. 죽이세요 형님. 제가 이 성안에 있는 한 살아도 산게 아닙니다. 바야짓도 웃었다. 바라반은 순식간에 미소를 잃었다.  그걸 보고 바야짓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형은 어금니를 악물며 말했다. 거짓말 하지마.
아, 형님. 사랑하는 나의 왕. 그 높은 사람이 고작 자신 때문에 눈안의 실핏줄이 터진채 흔들리고 있다.







제목조차 못붙였습니다 ㅋ...ㅋㅋ
2편은 배드씬이 나오기 때문에 암호가 걸려있습니다. 암호는 성인이신 지인분에 한하여 알려드리려 합니다.
Posted by Karin(카린)
2014. 3. 2. 18:55



처음 채색해본 바야짓.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야짓으로 모에모에큥  (0) 2014.03.09
츄리닝 입은 바라반  (0) 2014.03.09
[뒤조심] 바야짓 다리까기  (0) 2014.03.09
자가노스 세일러복  (0) 2014.03.02
장국의 알타이르 낙서_카르바하르, 안토니오 중심  (0) 2014.03.02
Posted by Karin(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