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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3.09 [엑퍼클/에찰] 사랑이야기를 쓰지 못하는 에릭
2014. 3. 9.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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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9. 02:57

에릭 렌셔는 매우 매니악한 취향의 소설가였다. 에릭이 묘사하는 캐릭터들은 독창적이었고, 에릭은 심리묘사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데뷔를 하지 못했다. 에릭은 남이 생각해볼 법한 설정이나 스토리를 강박적으로 싫어했다. 분명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재능이지만, 유행할만한 요소를 전혀 차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중작가로 팔리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의에 빠진 에릭은 존경하던 선배 작가가 출판사 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릭은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배를 찾아갔다. 평소 에릭을 눈여겨 보고 있던 선배 작가는 에릭의 원고를 보자마자 에릭의 장점과 단점이 그 옛날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릭의 재능은 아까웠다. 선배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에릭에게 절충선을 제시했다. 선배는 에릭에게 에릭의 데뷔를 돕고 싶지만, 현재 자신의 출판사가 자리를 잡지 못한 만큼, 일단 팔릴만한 물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배가 제시한 것은 에릭의 심리묘사를 활용한 연애소설이었다.


연애소설이라니. 싸구려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에릭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 기회라도 준 출판사는 이곳이 유일했다. 에릭은 울며 겨자먹기로 연애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물은 형편 없었다. 에릭 렌셔는 헌신적이고 제법 괜찮은 연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대체 왜 사람들이 사랑노래에 미치고, 사랑영화를 보고, 가상의 사랑이야기에 집착하는 것인지 전혀 알수 없었다. 물론 연애는 좋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에릭은 그와의 육체관계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에릭의 연애소설은 [한눈에 반했다]가 아니라 [잠자리가 필요해서 만났다] [조금 끌려서 만나긴 했는데 몇년 만나니 시들해졌다]라는 그 자신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에릭의 연인이 된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찰스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찰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듬뿍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인간의 선의와 애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에릭과의 연애 또한 만족하고 있었다. 찰스는 에릭이 프로작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고민은 최근 몇 년보다도 더욱 심각해 보였다.


찰스는 에릭에게 넌지시 최근 에릭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에릭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에릭이 사랑이야기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째서? 에릭은 말수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좋은 연인이었다. 찰스는 에릭과 사귀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에릭이 한눈도 팔지 않고 신사적인 사람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열정이 부족하려나. 그러나 에릭과의 잠자리가 만족스러웠기에 그 또한 큰 일은 아니었다.


어쨌건 에릭의 데뷔가 중요했기 때문에 찰스는 헌신적으로 에릭을 도와주었다. 헌신적으로 도와준다고 하여도, 에릭의 소설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다. 찰스는 이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사귈 때도 희미하고 눈치채고 있던 에릭의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알게 되었다.


에릭 렌셔는 가여운 사람이었다.

찰스는 말로만 듣던 아동학대의 대상자를 처음 겪었다. 에릭의 상처는 너무나 컸고, 거진 30년을 걸쳐 세겨진 선입관은 어떤 햇살도 받아들일 틈새를 내어주지 않았다. 벽, 벽이다. 찰스는 울고, 달래고, 속삭이고, 껴안고, 모든 노력을 다 해봤다.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에릭은 그 모든 것을 거절하며 찰스를 일정 이상 받아들이지도 자기 자신이 나오지도 않았다.


찰스는 에릭과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외로워져갔다. 찰스는 대체 왜 이렇게 잘난 남자의 주변에 사람이 없었는지 깨달으며 지쳐갔다. 정말로 사랑하는 한 사람 정도는 포용할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찰스의 오만이었다. 찰스는 에릭을 만나는 것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상처입은 그를 동정하는 걸까? 가끔 에릭이 찰스의 부유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이유로 더 내칠 때 찰스는 더 절망을 느꼈다. 그러나 에릭은 정말, 정말로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에릭은 찰스의 조언에 따라 -에릭 자신이 전혀 믿지 않는- 완벽한 사랑을 묘사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묘사에서 에릭은 자신도 모르게 미친듯이 집필했다.
소설이 완성되어 갈수록 에릭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어찌어찌 단편을 완성했다. 이런 사랑을 할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나. 에릭은 모형정원같이 완벽한 스토리를 보며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에릭은 충동적으로 맨 뒷편에 먹물로 거짓말! 이라고 휘갈겼다. 에릭은 그것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날 에릭은 폭음을 하다 급성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에릭이 입원해있는 동안 찰스는 에릭의 부탁으로 에릭의 집에 원고지와 몇 가지 필요한 자료를 가지러 갔다. 입원한 동안에는 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언가 쓰는 것이 더 안심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는 에릭의 방에서 쓰레기통에 들어있던 소설을 보게되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아마도 에릭을 입원시킨 결정적인 이유가 그 종이뭉치일거란 직감이 들었다.
찰스는 쓰레기통에서 거칠게 내팽겨쳐진 원고더미를 들어올린 후 한장, 한장, 원고지를 넘겼다. 분명히 평범한 사랑이야기이긴 한데 드문드문 떨리는 필체와, 불안하게 흐트러지는 에릭답지 않은 지리멸렬한 문장이 에릭의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소설이 사랑스러울스록 섬세한 슬픔이 심장을 파고 들었다 .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지막 장의 휘갈긴 낙서를 보자 서있을 수가 없어 찰스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흐르는 눈물이 펑펑 절규가 되었다. 울고 울면서, 찰스는 자신이 두 번 다시는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찰스 자기 자신이 그만 텅 비어버렸음을 것을 깨달았다. 

둘은 에릭이 퇴원할 때까지 좀 더 사귀었지만, 초겨울 마지막 달려있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조용히 헤어졌다.




 

에릭은 찰스와는 담담하게 헤어졌지만, 며칠 지나지도 않아 선배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감정을 터트렸다. 선배는 에릭이 퇴원한 후에야 연락을 받았기에 서둘려 에릭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 에릭은 이번에도 잔뜩 취해있었다. 에릭은 선배에게 안한다 했잖아요, 그건 쓰레기에요- 부터 시작해서, 내가 쓴 사랑 이야기는 완전히 가식이다, 알지도 못하는 걸 미사여구로 꾸며놓은 사기라고 외쳤다. 자신은 영혼이 기형인 인간이라 제대로 된 사랑을 모르는 인간인데 어쩌란 말이냐며 버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에릭은 다음날 오후까지 자다가 간신히 일어났는데, 선배가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며칠 전 입원을 한 에릭을 걱정해서 날이 밝자마자 바로 에릭의 집으로 간 것이다. 에릭은 문도 잠그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선배는 에릭에게 그렇게까지 그 소설을 쓰기 싫어하는 것인줄 몰랐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선배는 에릭이 몇번이나 건낸 원고를 떠올렸다. 그것은 출판하기엔 무언가 정말, 이상한 것이었다. 다른 글에서는 무척이나 이지적이고 어른스러운 작가가, 유독 사랑이란 주제 앞에서 불안한 어린아이처럼 변덕스럽고도 비뚠 심성을 내비쳤다. 선배는 조금 망설이다가 에릭에게 넌 믿지도 않는다는 그 사랑을 너무나도 갈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쨌건 이번 일로 에릭은 의욕을 잃어 집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괜히 그 단편을 썼나 싶었다. 아니 애초에 재능도 없는데 소설을 쓰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은, 찰스와 괜히 헤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 에릭의 경험으로 보건대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분명 자신의 문제 때문에 둘은 지쳐서 헤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에릭은 평소처럼 원나잇만 할껄 괜히 애인같은 걸 만들어서 괴롭다고 생각했다. 찰스가 그리웠지만 에릭은 막판에 찰스를 이용하기만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릭은 차마 찰스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죄책감과 그리움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

시간이 지나 상처가 회복될 때 쯤, 에릭은 식료품을 사러 거리를 나갔다. 거리에는 일년 전 유행하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에릭은 문득 흘러나오는 가사가 에릭 자신과 찰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에릭은 간만에 책방에 들려 새로 나온 소설들을 살펴보았다. 한 소설에 나온 헤어진 커플이 에릭과 찰스의 상황과 비슷하여 너무 가슴아팠다. 에릭은 며칠 후 좋아하던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나왔는데, 찰스가 생각나서 더 몰입하게 되었다. 에릭은 인간이 만든 그 모든 것에서 찰스를 떠올렸다. 심지어 비문학 책을 봐도 인간관계, 인생에 대한 서술이 모두 자신과 그의 관계가 부서진 이유를 설명하는 것 만 같았다. 생활에 마주치는 모든 것이 에릭 자신과 그로 치환하여 보였다. 


에릭은 자신이 내던졌던 자신의 마지막 단편을 천천히 읽었다. 그 땐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던 단어들. 뻔한 문장들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완벽한 사랑 이야기가 거기에 있었다.




후일담1.
에릭의 소설은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렸다.

후일담2.
몇 개월 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조용해 졌다. 

에릭의 집앞에 한 남자가 망설이며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에릭이 자신에게 붙인 별명과 같은 제목의 책이 들려있었다. 




여담 설정은 에릭의 소설이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리게 된 것은 에릭의 소설을 원작으로 다른 매체가 만들어졌는데 그 매체가 크게 성공하고, 그 매체를 접한 사람들이 에릭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았는데 워낙 에릭이 심리묘사를 애절하게 잘 해서 오히려 초판보다 재판 이후가 더 잘 팔리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Karin(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