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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4. 18:24

도검온에  코기미카 AU 소설이 재판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믿는 독실한 신부 미카즈키를  실제 신인 코기츠네가 여러모로 예뻐해주는(...) 내용입니다.

귀접 묘사가 나옵니다.




24페이지  4000원 표지 전체금박 

전프레 지난 소설의  컬러표지.









신부

 

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

아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신이 있다.

 

인간도 동물도 귀신도 아닌 [그들]은 있었다. 때론 우스워서, 때론 가여워 세상의 것을 보듬어 살피니 어느새 그들이 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작은 장난질과 상상할 수 없는 권능으로 세계에 간섭했지만 사실 그들은 막연한 책임감과 희박한 애정으로 저 빨리 죽는 아랫것들의 변덕에 어울려 줄 뿐이었다.

 

인간들은 그들을 신으로 불렀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짜맞추고 다른 이의 상상을 훔쳐다 덧씌우기도 했다. 오랜 노력이 우연히 힘을 얻어 한 종교가 역사가 되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차출하여 그 아이의 일생을 신에게 바쳤는데, 그 아이의 가족과 연을 끊게 했으며 그 아이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 또한 금지하여 평생 신에게 올릴 제사와 신도들의 교육에 헌신케 하였다. 그들을 신의 신부라고 불렀다.

 

(생략)


새벽 다섯시.

미카즈키는 눈을 떴다. 예배당의 하루는 빠르다. 몸가짐을 정결히하고 기도실에 도착하자, 이미 50여의 사람이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그 우는 청년들은 상대가 소리를 지르며 신을 외치자 자신의 신앙이 더 열악하게 보일까 발악하듯 더욱 소리를 높여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카즈키는 차분하게 그들의 속으로 섞여 들어가, 조심스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후 두 손을 가슴 위로 모았다.

 

"신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대저 저희를 구하옵소서. "

 

세계는 언제나 처럼 혼란스럽다. 인간은 공평한 존재가 아니며, 각지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오랜 종교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화려해질 뿐 그 안은 마치 텅 빈 강냉이와 같았다. 신은 이 세상을 정의로 심판하고 사랑으로 구원한다고 들었는데, 미카즈키는 생의 아주 찰나의 순간 외에는 도저히 신의 손길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든 신부들이 소리높여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들이 신의 부름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여 이렇게 고통스러워진 걸까? 자신이 이 괴로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였다. 미카즈키가 신에게 자신을 바친지 10년째. 믿음은 아무런 조건없이 믿어야 진실이라는데 미카즈키의 신앙이 흔들려서 일까, 남들이 성령을 받았다느니 신에게 응답을 받았다느니 하여 교회에서 수많은 기쁨이 있을 때 미카즈키는 단 한번도 신에게 선택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신부가 신을 부정하겠는가? 의심하겠는가?

아마도 미카즈키의 노력이 신에게는 가당치 않게 보였음에 분명하다.

미카즈키는 무릎을 꿇고 계속 기도하였다.

 

(생략)

 

"신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대저 저희를 구하옵소서!!"

미카즈키 또한 전신을 떨며 오열하며 외치고 외쳤다. 그렇다. 기도하는 이들은 미친게 아니다. 그들 모두 대답하지 않는 신, 인류의 역사상 단 한번도 책 이외의 곳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그 신의 그림자에 갈급하여 제 정신을 잠시 놓아버리고 소리높여 그를 구할 뿐이다.

'사실 그 사람을 죽인건 저에요. 이곳에서 말한 것은 말할 수 없는게 신부님 맞죠? 아아,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 없어요. 다음엔 다른 사람도 죽여보려구요.', '저 신부님이 저를 불러 음탕한 일을 시켰어요.', '그냥 내일 죽으려구요.', '왜 저에게만 이런일이 일어나죠?', '왜 이렇게 고통스럽죠?', '어떻게.. 신부님,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어요.', '신부님.....신은 있나요?'

. 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가여워서, 모두가 가여워서. 제 자신이 견딜수가 없으니까.

 


 

인간의 기도와 염원은 그 대부분이 의미없는 신기루처럼 허공에 흩어지지만, 아주 적은 일부가 하늘에 닿고는 했다. 신 중 하나가 다른 신에게 나른하게 기대며 인간들의 아우성을 지켜보았다.

- 오늘도 아이들은 소란스럽다.

- 헛되도다. 그들이 믿는 자는 없다. 우리가 증인이다.

- 우리 중 하나가 장난질을 하면 그것에 제 상상을 붙여 마음대로 존재를 만들어 섬긴다.

- 몇은 신을 만났다고 거짓을 고하고, 누구는 제 자신이 신이라 하기도 한다. 정말 헛된 족속들 이로다.

 

그때 흰 머리카락의 신이 슬며시 일어났다. 신들 사이에 코기츠네라고 불리는 그는 제법 인간들에게 다정한 성품이기도 하여 동방의 어떤 나라에선 여우신으로 섬겨지기도 하였다.


- 코기츠네여, 무엇을 보고 있는가.

- 한 아이가 신을 찾으며 울고 있습니다. 진짜 그들이 말하는 신이 없는 한, 제가 신이니.


여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 신으로서 인간의 소원을 들어줘야겠지요.



 

 (생략)



"...!“

 

등줄기가 삐쭉 섰다. 이 방 안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뒷목을 축축한 것으로 핥아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벌레인가, 뒤를 돌아 손으로 재빨리 목을 감쌌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어쩐지 덥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랫배가 뭉근하게 당기는 느낌을 안다. 미카즈키가 남성으로 태어나 가끔 겪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역시 제 수련이 부족하여 신이 응답하지 않은 것이 틀림 없다. 성감을 무시하며 미카즈키는 성서를 폈다. 그러나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마치 바지의 천이 제 성기를 애무하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척추의 선을 따라 간지러운 느낌이 올라와 도저히 글씨를 읽을 수가 없었다. 타락한걸까.

 

미카즈키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주먹이 하얗게 될 때까지 손을 세게 주었다. 욕망에 넘어갈 수 없다. 수음하지 않겠다. 하지만 차츰 미카즈키의 몸이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우윽...."

 

귀 안으로 공기가 스며든다. 등의 땀이 미카즈키를 끝없이 애무하며 몰아붙이고, 미카즈키의 하의가 달래듯 미카즈키의 성기를 아주 부드럽게 애무하는듯 했다. 무엇인가 이상해서 미카즈키는 서둘러 목욕탕으로 달려가, 얼굴을 씼었다. 차가운 물에 몇번이고 얼굴을 담그자, 약간이나마 성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눈물에 가득 젖고 머리카락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정갈하고 엄숙한 신부의 권위는 아무데에도 없었다. 제 육욕에 치를 떨며 미카즈키는 잠자리에 들었다. 누군가 옆에서 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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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rin(카린)
2015. 8. 16. 17:47

코기미카

코기> 미카 입니다. 거진 천년의 짝사랑..

입덕시 미카즈키가 형이라고 알고 있는데다 미카즈키가 존댓말을 사용하고 코기가 반말을 사용하는게 영 어색해서 걍 미카즈키가 먼저 태어난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습니다.

 

 

 





 

 

 

 처음 태어나 미카즈키를 만난 순간, 코기츠네마루는 어쩐지 이 신과 자신은 깊은 연으로 묶이지 않을까 직감했더랬다.

수많은 반딧불이가 타닥타닥 춤을 추던 그 밤, 미카즈키라던 형님은 아직 작은 여우신을 위해 고개를 숙여 헤사히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예쁜 머릿결이구나. 만져봐도 좋으련?'


 코기츠네마루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미카즈키는 아이의 머리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첫 만남인지라 아직 붙은 정이 없는 데도 이 형님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여우 검의 머리를 매만지며 다정한 눈길을 보내었다. 갓 태어난 칼은 천하미인에 홀려 시선을 돌리지도 못한채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쩐지 코기츠네마루는 손바닥이 축축히 젖어들어간다고 느꼈다. 그렇게 죄없는 제 손만 꼼지락거리며 코기츠네는, 미카즈키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가만히 두고만 있었다.


 

 

 백년이 흘렀다. 이백년이 흘렀다.

코기츠네마루는 제법 쓸만해져서 주인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검이되었다. 코기츠네마루가 미카즈키의 가슴께 오기 전부터, 미카즈키는 수시로 코기츠네마루를 제 무릎위에 올려서 등을 다독이며 재우기도 했다. 애 버릇 잘못 들인다고 이시키리마루가 나즉하게 말하면,  코기츠네마루는 혹시 미카즈키가 그 말에 제 몸을 물릴까봐 미카즈키의 가슴팍에 더더욱 고개를 파묻곤 하였다.

 

 

 

코기츠네마루의 키가 미카즈키와 호등해 지면서 부터 도리어 코기츠네마루는 미카즈키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다.

미카즈키의 눈이 너무 예뻐 시선을 코로 돌리면 곧바로 입술이 눈에 들어오고, 그게 곤란해 귀로 시선을 돌리면 살랑이는 머리카락에 손을 대고 싶어 곤란해진다. 아우여, 왜 그러느냐고 이 태평한 미인이 고개를 갸웃이면, 암만 이제는 능숙해진 코기츠네마루라도 말을 얼머부리며 괜히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하였다.


 미카즈키는 가끔 자신앞에서 허둥대는 코기츠네마루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었지만, 코기츠네가 상황을 넘기기 위해 웃음으로 넘기거나 말을 꼬는 장난을 치면 곧 상황에 물들어 잊고는 했다. 그 천진난만함조차 사랑스러워 코기츠네마루는 쓰게 웃기도 했고, 안타까움에 한숨짓기도 하였다. 신이란 초월자가 아니었던가. 어째 코기츠네는 검으로 완성될수록 외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 당신은 달의 검이니 달에게 빌어볼까.

여우에게 하늘에 오를 기회를 주오.

내 호꾹 호꾹 울며 산발을 하고 이 밤에 춤을 추외다.

이 광대 놀음을 가엾이 여겨 저 형의 마음 한칸을 내게 주오.


헛헛하며 코기츠네마루는 웃었다. 인간과 오래 지내다 보니 사람의 감정이 옮는듯 하였다. 혹은 제 태생이 따스한 짐승의 혼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이 노래하는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것 참 뿌듯하기도, 서럽기도, 기쁘기도 한 감정이었다. 무척이나 곤란한데 없애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 더욱 코기츠네마루를 괴롭게 하는건, 자신의 무릎을 베고 제 허벅지에 따끈한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바로 무방비한 형님이었다.

 



눈치는 주변이 더 빨리 채었다. 하기사 살아온 연식이 얼마던가. 괜히 산죠들이 코기츠네마루를 툭툭 치며 처음에는 비웃음, 나중에는 동정하며 어찌 자리라도 마련해줄까 물었다. 코기츠네마루는 웃었다.

  

 물건에 긷든 것도 신.

이름을 얻었기에 설령 검인 본체가 사라져도 인간들이 필요하여 부르는한 그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사랑의 속성이 무엇인가. 결국 상대를 갈구하는 마음에 그의 일부를 구속함이 아닌가. 


정말로 은애한다면 무엇이 상대를 가장 아끼는 길인가. 산죠의 이름아래 묶인 형제의 의를 끊어어야 할까? 이 긴 세월 그 누구도 미카즈키를 성애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는데 마치 인간의 부부처럼 연을 맺고 싶다 하여 그의 자존심에 타격을 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코기츠네마루는 여우의 웃음을 짓는다. 상사로 위장이 끓어 계속 미카즈키가 원하는 대로 어울린다.

본체가 쇠인 것은 이리하여 좋다. 제 본채에 정말로 수컷의 심장이 있었다면 이미 몇 백년 전에 단장(斷腸)되었을 것이다.

 

   

- 코기츠네야.

 


아. 다시 당신이 부른다. 우리가 인간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럼 내가 한번은 술에 취한 척 내 반려가 되어주겠냐고 고백했을까. 그때도 형제의 의를 지키며 이 마음을 삭였을까.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부름은 고통이자 영광이다. 코기츠네마루 또한 미카즈키의 부름에 화답하여, 미카즈키가 내민 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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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rin(카린)
2015. 6. 13. 00:07

하야마와 하치만이 떡을 치게 해달라는 리퀘를 받았는데 오랫만에 캐릭터 파악을 하려니 스토리가 안나가더라구요..

고민하다 미래의 두 사람이 떡을 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슬쩍 미뤄버렸습니다. 하야마가 많이 캐붕이니 괜찮으신 분만 부탁드립니다 !


** 약간의 R19, 얀데레 요소, 범죄가 있습니다. 자세한 묘사는 없어 전체공개 합니다.














완벽한 세계를 믿었다. 자라면서 그것이 이뤄지기 무척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실망할 일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만 더 노력한다면, [모두가 사이좋은 세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운이 좋았는지, 벽돌을 쌓아 올리듯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작게 크게 삐걱거림을 정리하며 하나의 고요하고 평화로은 영역을 이루게 되었다. 분명 이 방식이 가장 상처를 적게 만드는 유일한 노선이리라.


어쩌면 그도 나와 같은 것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 누구도 손상받지 않는 것

그렇지만 그의 방식은 달랐지. -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하치만은 차츰 변해갔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원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치만의 세계는 나의 것과 달랐다.

이제는 서로를 상처입히지도 더 다가가지도 않게 정체되는 내 세계와는 달리, 하치만의 세계는 무척이나 불안정 하여 누군가는 상처입고, 무언가 엉망진창이고, 외부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어째서인가. 나는 그 방식을 점차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름을 바르게 외우는데 한달

친구로 허락받는데 1년

키스가 이상해지지 않는데 5년

친구로도 남게 되지 않게된 6년

처음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 13년째

그리고 처음으로 상대방을 온전히 믿을수 있게 된 13년 후의 40일 후


나는 변했다. 세상을 기만하는 것은 너를 지키는 것보다 하찮은 일이다.

너 또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전의 너라면 이런 나를 용서하지 않았을 테고 너 자신조차 인정할수 없었겠지.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에 같아질 수 없으나 변해간다. 

당연한 일이다. 너와 나의 세계가 충돌했기에, 나는 변했다. 그것이 때론 어색하고, 괴롭고, 혼란스러워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1년차

하야마란 타입은 만날 일도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 전에 그런 인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하야마도 결국엔 이기적인 욕구로 주변의 PEACE MAKER를 자청한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 행동은 이타적이었다.

그런 것 내가 알바 아니다. 하야마 놈이 내 곁에서 알짱거리지만 않았어도 내 뉴런이 이 일로 전기화학적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는 1도 없었다.


망할 자식. 내가 네 [이세상 가장 신선한 타입 영광의 1위]라도 되는거냐. 아니면 네가 가장 소중히 지키려 했던 그룹이 사실 너 자체에겐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인간들이었던 거냐. 아니면 모태솔로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네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의 1/30만 다른 여자 아무에게나 보내어 연애물의 주인공이나 되라. 나도 너 같은 얼굴의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라면 분하다는 감정도 없이 봐줄수도 있겠다. 왜 내 주변에서 알짱거는거냐고. 왜 결국 내가 신경쓰이게 만드는 거냐고. 


왜 내가 너를,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냐고.

 (이 시점에서 나는 이미 이놈을 졸업 후에도 연하장을 보낼수도 있는 인간에 넣었을 지도 모른다. 네 전략이 먹혔다 하야마. 진로로 영업과를 추천한다.)










5년차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한번은, 아니 몇번은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힘의 논리로 규정되는 남자의 세계에서 마치 아프리카 코끼리와 북극해의 바다사자와 같이(정정한다. 한쪽은 사실 일본의 방아깨비 였을 수도 있겠다) 달랐던 우리 둘은 왜 몇번이고 만났을까. 왜 너도 나도 어깨의 힘을 뺀지 오래 되었는데도, 침묵이 대화의 반 이상을 차지할 수 밖에 없었을까. 


술에 취한 사람은 없었다. 동성의 첫키스는 다른 이를 통해 망상한 적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아득했다. 너와 나는 어울리지는 않아도, 친구였지는 않았나. 그러나 이것은 변명이다.


나는 싫지않도 두렵지 않았다. 그저 내 손에 맡겨진 총알을 보았다. 너를 영원히 차단할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6년차

바람둥이 죽어라. 잘생겼으니 할복이 좋겠다. 남자는 하반신의 짐승이다. 나는 아메바다. 나는 쾌락의 노예다. 살고싶지 않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항문에 성감대를 만든 신은 할복하는게 좋겠어. 아니 잠깐. 내가 하야마를 깔면 왜 안된다는 거지? 이건 성기 크기와 성능력이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선입견에 불가능한데!








7년차가 되지 못하고

그런 말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런 문자 보지 않았더라면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내 문제였을 수도 있다고.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나. 결혼이라도 할 줄 알았냐.

내겐 무리였어. 하지만 너도 감당할 수 없었잖냐.


첫 시작부터 잘못된걸 알고 있었다. 미친 놈은 네가 아니라 나였을거다. 

왜 고백을 받아줬던 걸까. 하지만 애초에 내가 그 녀석을 외면할 수 있기는 했나.

가슴을 쳐도 목이 막혀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너와 나, 머리가 좋았던 거 아니었어? 이렇게 까지 안 맞는게 분명한데, 어째서 서로를 지나치지 못했던 거냐. 왜 그렇게 정을 쌓아 버린거냐. 어린날의 멍청이들. 다른 사람들과 다를것도 없는 과정이잖아.


제발 행복해라. 개자식아.













13년째


나는 어떻게든 나이가 들었기에 그리고 내 어린날이 너무 가슴아파서 더는 괴로운 일이 없을 줄 알았어.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조차 못했어.

이건 잘못된거지.그렇지?

그런데 말야. 


나는 너를















13년 하고 40일


영화에 나올 일 아닌가. 아니 어쩌면 너무 흔한 소재라 채용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용서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무섭다. 혹시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나 때문은 아닌가.

그렇지만 내가 하려는 것을 철회하고 싶지 않다. 영원히 상처가 남게 된 오른손을 들어,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너의 왼손을 끌어올린다.

눈물로 얼룩지고 무엇도 기대할수 없다는 얼굴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책임지고 싶다. 더 노력해보고 싶다. 다시 시작해보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호모의 치정싸움이라니 최악이다. 그 주인공이 너와 내가 된 것에 대해 신의 저주를 바란다. 그런데 품안의 상대가 너무도 떨어서 한순간도 몸을 뗄 수 없었다.











===============================================================


수위글을 리퀘받았는데 설정과 큰 줄거리만 짜놓다니 언젠간 더 만회해야겠네요 헤헷.. 


오랫만에 쓴 글이라 말도 안되도록 허술하게 썼습니다. 쓰면서는 큰 숙제를 해낸 느낌입니다. 하치만이 하야마를 좋아하게 되기가 너무 어려워요 우우 하야마 분발해라 우우

Posted by Karin(카린)
2015. 6. 12. 23:01

바야짓은 한번도 바라반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손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커서는 닿을 수 있는 것과 잡아도 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지만 드물게 그런 기회가 찾아올 때가 있었다. 그 나이 또래답게 가끔 바야짓이 눈물을 보이는 때가 있었는데, 가끔은 바라반이 힘들이잖고 동생을 업어드는 것으로 제 성장을 확인하기도 했다. 너는 어째 업을 때마다 가벼워지는 거냐. 형님이 힘이 세어지셔서 그렇습니다. 성큼성큼 걷는 바라반의 등에서 바야짓은 복도가 더 길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어쨌거나 바라반에게 업힌 어린 바야짓은, 매번 손을 꿈지럭거리며 형의 그 붉은 머리칼을 만져보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결국 바야짓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바야짓이 만약 바라반을 안아들었다면 동생이 매혹당한 표정으로 제 머리칼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고, 그럼 순순히는 아니겠지만, 짖궂은 말들(바라반에게는 장난에 속하는)로 동생을 울리기 직전까지 갈지는 몰라도 결국 그 머리칼을 바야짓의 손아귀에 넣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없어 바라반은 눈치채지 못했고, 바야짓은 한번도 제 형의 머리칼을 잡을 수 없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너무 붉어 손이 닿는 순간 타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Posted by Karin(카린)
2015. 6. 12. 22:54

슬레이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이 언제나 슬레이만 본인의 원대로 풀리지는 않았으나 가고 싶은 곳에 닿고 만나고 싶은 이를 접하며 수 많은 기회를 누렸다.

그의 누적된 불행의 값은 상상치 못할 눈덩이가 되어 슬레이만을 덮쳤다.

 

일족이 모두 살해된 날, 비보를 듣고 달려와도 이미 고향은 남은 것이 없었다. 슬레이만은 그 후 자신의 바닥을 보았다. 슬레이만이 가지고 있던 여유도 자신감도 모두 환상같은 것이었다. 술에 취해 폭력으로 시간을 낭비하였다. 누군가가 또렷하게 슬레이만에게 임무를 새겨넣어 주기 전까지 그는 그저 어둠이었다.

 

 

 

 

 

 

 

슬레이만은 실로 간만에 휴가를 받았다. 어린 연인과 함께 귀국한 것도 즐거운데 일도 없다니 흔하지 않다. 설마 엄격한 상관이 슬레이만과 마흐무트 파샤의 관계를 유추하고 배려해 준 것일까 생각했지만, 자가노스가 둘의 관계를 안다 할지라도 이렇게 일정을 맞춰 줄 리는 없었다. 순전, 행운이다. 슬레이만은 자가노스에게 보고를 마치자 마자 마흐무트의 집으로 향했다. 

 

휴일이라고 해서 딱히 할만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축제는 끝났고, 오늘은 시장이 서는 날이 아니며, 구경할 만한 곳으로 이동할 정도로 휴가를 길게 받은 것도 아니다. 방에만 있기에는 큐로스와 아빌리가의 눈초리가 사납다. 그들에게 슬레이만은 친하고 어린 동생을 낼름 삼킨 속이 새카만 양심없는 놈 이상도 이하도 아닐게다.

 

그러나 이 조건이 슬레이만 베이의 연애를 방해하기엔 슬레이만은 이미 경험이 풍부한 성인 남자였다. 슬레이만은 큐로스가 지키는 정문을 피해 마흐무트의 집 창문으로 접근했다. 아마 아빌리가가 봤을 테지만 모른척 해주리라. 잠겨진 유리창 정도는 열 수 있지만, 예의상 가볍게 노크를 하자 마흐무트가 바깥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한다.

 

"슬레이만 베이. 이곳은 문이 아닙니다."

"이해해줘. 네 부하 중에 무서운 까마귀가 있어서 말이야."

 

마흐무트는 한숨을 쉬면서도 슬레이만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자가노스 장군에게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고는 마쳤어."

"호오, 이렇게 빨리?"

"나는 능력있는 남자니까."

 

마흐무트는 이런 농담에 약하다. 슬레이만이 씩 웃어보이자 순간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한다. 귀여워라. 반응이 독해도 받아줄 수 있지만, 똑똑하고 순진하다는 양립이 불가능한 속성을 가진 연인이 귀여워 슬레이만은 마흐무트의 가녀린 금발을 슥슥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이 취급은..."

"그래, 하지 않는다고 했지."

 

슬레이만은 대신 마흐무트의 온 몸을 껴안았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마흐무트는 아이같았다. 뜨끈뜨끈하고 부드러운 체온이 기분좋다. 마흐무트도 슬레이만의 등에 팔을 돌렸다. 잠시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였다.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묵직하고, 살내음이 퍼진다. 이 순간 각자의 이름이 아니라 그 감각들이 모여 서로가 된다. 감촉이 심장을 따뜻하게 뎁혔다. 슬레이만은 자신 쪽에서 어리광을 부리듯 마흐무트의 몸 속으로 좀더 파고들었다. 마흐무트는 천천히 슬레이만의 등을 쓸었다. 

 

Posted by Karin(카린)
2014. 6. 29. 18:00

사쿤님이 그리셨던 마흐무트와 이스칸달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었습니다.

허락해 주신 사쿤님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그 날짐승은 제가 제 주인을 어머니로 인식하였다. 갓 알에서 깬 검둥수리에겐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손도 마치 신의 손길이라 여겼으리라. 따스하지만 실수가 많았던 열개의 손가락은 열심히도 꼬물거리며 삐약소리도 못내는 벌거숭이 병아리를 키워냈다. 어미잃은 알이라 소년의 어미가 걱정했지만 아이가 한시도 품에서 떼지 않았기에 그 아이는 제 주인의 어깨 이상으로 자라났다.

 

"산책시간인가. 잠시 다녀와, 이스칸달."

 

아직도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지시에 이제는 거대해진 이스칸달이 꽉 쥐어틀었던 주인의 어깨를 놔주며 어깨죽지를 편다. 돛과 같은 웅장한 깃털을 펼치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두번만 훼를 쳐도 묵직한 공기덩어리가 그 몸을 떠올렸다. 이제는 이스칸달이라 이름붙은 그는 제 핏줄이 하늘의 제왕의 증거 임을 안다. 위세할 필요는 없으나 과시않을 이유도 없다. 다 피면 장정의 키와 맞먹는 그 아름다운 갈빛의 날개를 내리 치자 얇은 아이의 어깨에서 발이 떠진다. 고개를 하늘로 고정한다. 몸이 뜨는 부유감이 기분좋다. 이를 아찔하게 여기는 이는 하늘을 누빌 자격이 없다.

 

멀리 작은 새들이 이스칸달의 등장에 겁을 먹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들은 이스칸달의 밑에 휘물아치는 공기의 압이 어찌나 강한지 알지 못하리라. 이 몸에 부딪치는 바람이 눈을 아릴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어찌하겠는가. 저들은 저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하늘에 오르는 순간 이 몸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한 자. 가히 왕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나 피를 보지 않은지 이틀이 지났다. 어깨죽지가 무엇 하나의 숨통을 끊으라며 어찌나 아우성을 치던지 날지 않은지 하루만에 이스칸달은 주인의 어깨 위에서 좀이 쑤셔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평지를 보자 까마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두세군데가 소란을 피우며 어지럽다. 하나는 기어다니는 것이요 둘은 제법 뛰는 것이다. 작은 놈을 포기하고 덩어리 큰 놈을 잡았다. 곧바로 하강하며 이스칸달이 칼날처럼 발을 세웠다. 그것이 뛴다. 지면에 부딪힐 것처럼 하강하자 연한 황갈색의 물체가 서둘러 굴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이스칸달은 알았다. 저것은 죽는다. - 그 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토끼는 이스칸달이 쥐어짜는 발톱의 힘에 절명했다.

 

 

쥐도 아니고 더럽혀지지도 않았다. 깨끗하게 숨을 거둔 토끼를 내려며 잠시 고민하다 이스칸달은 이제는 사물이 된 그것을 움켜잡고 제 작은 주인에게 돌아갔다. 공교롭게 쥔 토끼의 몸은 아직도 따뜻하여 작디작은 주인의 어깨가 생각났다. 서둘러 벌써 그리운 제 주인의 곁으로 날아들어갔다. 소년은 기쁘게 이스칸달을 맞이하며 자애로이 웃었다. 이스칸달을 위해 팔을 내주었지만 이스칸달은 앉지 않고 바닥에 조심스레 토끼부터 내려놓고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자리잡았다.

 

"사냥에 성공했니? 이스칸달."

 

주인은 바닥을 싫어하는 새의 습성을 잘 알아 곧바로 이스칸달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 몸을 제 몸 위로 올렸다. 이스칸달이 검둥수리치고도 제법 덩치가 있는데다 소년의 어깨가 아직 작아 남이 보면 숫제 새의 품에 소년이 안기는 격이었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품안에서 나는 좋은 향내를 맡으려다 제 몸이 높아져 더는 체취를 맡을수 없자 아쉬웠지만 크게 내색않고 얌전히 소년이 정해주는 위치대로 자세를 잡았다. 

 

마흐무트는 자랑스러운 파트너의 깃을 어루만졌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첫 정을 받은 형제였고 자식이었으며 검이었고 방패였다. 어찌나 수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는지 파샤의 앞에 이레 붙는 별칭으로 그는 검둥수리를 고집하였다. 이스칸달이 곧 마흐무트의 자부심이었으며 마흐무트가 곧 이스칸달의 모든 것이었다.

 

이스칸달이 날개도 피지 못한 시절 제 주인은 어미가 무참하게 윤간당해 죽어갈때도 소리한번 지르지 못하고 힉힉 거리며 제 손에서 잠든 더 어린 것만 쥐며 긴 밤을 새었다.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어 이를 악문 주인은 사람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칸달이 보기에도 독하게 제 자신을 몰아갔다. 많은 날이 있었다. 마흐무트의 맨 몸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이스칸달이다. 어떤 때는 긁힌 상처, 어느 날은 지독한 멍이 마흐무트의 여물지도 않은 몸에 끊일 날이 없었다. 이스칸달은 주인처럼 독해졌다. 다른 수리보다도 배는 먹고 주인이 지시하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그에게서 때지 않았다. 아침의 빛을 날개로 쳐 막고 밤의 이슬을 제 체온으로 식혀주었으나 이를 마흐무트가 아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인간의 시간과 동물의 시간은 다른가 보다. 이스칸달은 이미 다 컸는데도 마흐무트는 아직 다른 인간들 보다도 작았다. 그것이 마흐무트가 전장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될 리 만무했다. 이스칸달은 마흐무트가 보지 않을때도 제 부리와 발톱을 벼리고 깃을 다듬는다. 이제 어린 날 마흐무트의 손안에 크던 새끼새는 없다. 제가 날개가 되어 이젠 자신보다도 가녀린 주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스칸달."

 

이스칸달이 마흐무트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편다. 그 모습은 마치 마흐무트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뻗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전장을 누빈다. 소년이 검집에 손을 댐과 동시에 이스칸달이 소년의 몸에서 박차올랐다. 무엇을 하는지 지시하지 않아도 제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었다. 적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검고 흉학한 생물에 기세를 늦춘다. 그것이 수리였다는것을 알게 하기 전에 선봉의 시선을 흐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피냄새. 화약냄새. 비명과 금속음. 예민한 시각과 후각이 정보를 흐리기전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 인간의 욕망이 부딪힌다. 이스칸달이 보는 전쟁의 모습은 피식자도 포식자도 없이 그저 살고 싶은 자와 죽고 싶지 않은 자 외엔 없이 어지러이 엉켜있었다. 뒤로 돌아 주인에게 돌아간다. 이 혼란속에서 제 주인만의 소리만이 들린다. 제 주인의 존재만이 이스칸달의 몸을 이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리라는 소년의 확신이 마치 이스칸달이 점찍은 사냥감의 운명을 점쳤던 때마냥 선명해진다.

 

"다시, 가자. 이스칸달."

 

안다. 제 발톱으로도 꺾을수 있는 목과 채 발톱이 다 감기지도 않는 가녀린 몸을 하고도 이 소년은 아직도 자신의 신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검은 하늘의 왕은 인간의 싸움으로 뛰어든다. 제 주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검둥수리의 마흐무트 - 제 주인의 이름을 위하여.

Posted by Karin(카린)
2014. 6. 28. 23:50

바야짓이 술탄의 자리에 오른지 1년이 지났다. 나라의 주인은 드높은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바야짓은 평생에 걸쳐 제 2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 술탄의 제위에 올랐기에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지 결국은 몸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유난히 일어날 때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어느날, 바야짓은 모든 중신들이 모인 아침의 회의시간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금방 기운을 차리기는 했으나 바야짓의 얼굴이 창백하고 온 몸에서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기에 혼비백산한 대신들은 서둘러 궁의를 호출하였다. 바야짓은 소란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최근 자신의 몸은 신관으로서 지내던 그 날에 비해 무척이나 쇠약해졌기에 치료를 물리지 않았다.

 

"왕의 용태는 어떠하십니까."

"가벼운 체증과 어지러움증은 금방 나을 것입니다만, 두통과 간헐적인 사지의 마비는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기에 쉬이 잡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술탄의 근심이 줄어들어야지만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바야짓의 눈이 흐려졌다. 왕의 생각을 눈치가 빠른 이들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형님이라면 이보다 더 하신 상황에서도 거뜬하셨을 테지.

그리움은 찰나였다. 바야짓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바야짓은 대신들의 쪽을 보았다.

 

"이 몸은 나라의 것. 걱정을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건강에 신경을 쓰겠습니다."

 

엄숙한 왕의 명에 대신들은 모두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으나 바야짓의 시선은 그들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뒤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붉은 인영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올릴수 있는 기억이 있다. 그 날은 바야짓이 물의 도시로 가는 것이 확정된 날이었을게다. 그날 바야짓은 평소처럼 형님인 바라반의 곁에서 책을 읽으며 형님이 제 1왕자로서 받는 교육을 홀낏거리며 보고 있었다. 어린 바야짓이 보기에도 바라반은 진정한 왕의 그릇이었다. 바라반은 무즈라크라는 국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고, 군사와 무역 뿐 아니라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바야짓이 모르는 모든 것은 바라반이 알고 있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였기에 바야짓에게는 바라반이 제 2의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형과 헤어진다는 것이 결정된 날이 어찌나 슬펐는지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형을 보고 있었는데 아바마마가 찾으셔서 치장을 했던 기억. 형님의 얼굴이 쓸쓸해 보이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어 그가 무척이나 낯설었던 기억. 혹시 모를 화를 피하기 위하여 국법에 따라 각 왕위 계승자는 다른 지역에 있어야 하며 이제 바야짓이 궁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을 때의 충격. 부모와 떨어지는 것보다 사랑하는 형을 영영 볼수 없을 것 같던 슬픔에 눈물을 멈출수 없던 자신. 그런 소동을 알고도 찾아오지 않았던 형.

 

어린 나이에도 조숙하다고 칭찬을 듣던 바야짓이었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바야짓 자신이 생각해도 걱정이 될 정도로 오열을 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몇 시진을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낮에도 들리지 않던 형님은 밤에 조심스레 울다 지친 자신의 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주고 손수 꿀물을 입에 물리며 간호를 했더랬다. 신기하게도 눈이 가려져 보이지도 않던 바야짓은 아직 어른이 아니라 서툰 손길을 느끼고 형이라 확신했는지 곧바로 그에게 질문을 했다.

 

"형님은 제가 떠난다는데 슬프지도 않으신가요?"

"슬프지만 나라의 법이다."

"저는 싫습니다. 평생 형님의 곁에만 있고 싶습니다."

"걱정 말아라. 네가 자라면 네가 싫대도 내 곁에만 둘 것이다."

 

낮에는 그리 찾아도 오지 않더니 밤에는 어찌나 형님의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달콤하던지 바야짓의 눈에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차올랐다. 어린 가슴이 바르르 떨리다 다시금 흐느낌을 멈추지 않자 바라반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야짓의 심장 위에 올린후 도닥도닥 동생을 진정시켜 주었다.

 

"흑... 흑... 떠나는 것은 싫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괴롭습니다."

"울지 말아라."

 

쉽게 동생이 진정하지 않자 바라반이 침대 위에 올라와 이불째 바야짓을 끌어안고 드러난 바야짓의 이마에 입술을 맞대었다. 조금씩 떨림이 가라앉자 바라반이 조용히 동생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라. 평생 헤어지는 것이 아니잖니."

"형님은 제가 눈에 안보이면 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일만 하실 것 같습니다."

"내 가족중에 어머니보다도 아버지 보다도 사랑하는 것이 너이다. 그런 일은 없다."

"형님이 고은 신부를 맞이하면 말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난 장가를 들면 안되겠구나. 나는 왕자를 낳아야 하는데 큰일이 났어."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야짓은 대꾸를 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대었다. 바라반은 동생의 질투에 파안하며 다시 한번 동생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제가 형님 신부역까지 할테니 결혼을 하지 마세요."

"고약한 동생이로군."

"언제는 저보다 고운 여인이 없다며 절 희롱하며 부끄럽게 하시더니 너무하십니다."

"네 말이 맞다. 바야짓. 네 고은 얼굴이 보고 싶다. 얼굴을 보여다오."

 

그 말에 바야짓이 머뭇거렸다. 왜 그러냐고 묻자 얼굴이 흉할까 두렵다고 대답했다. 네가 미워보인 적이 한번도 없으니 살살 달래자 잔뜩 헝크러진 고슬머리의 아이가 심히 장관인 꼴을 하고 빼꼼 얼굴을 내민다. 도깨비같다고 놀리려다 연장자로서 마음을 고치고 바라반은 곱다며 동생의 얼굴 전체에 입술의 비를 내렸다.

 

바야짓이 떠나기 전날까지 형제는 완전히 밀착하여 지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형제애가 돈독하였고 석별의 정이 각고하였기에 술탄은 딱히 둘을 나무래지 않았다. 바야짓은 형의 목소리로 잠에서 깨고 형의 자장가로 잠자리에 들었다. 숨을 쉬듯 서로의 시간에 서로를 세겼다. 낮에는 형과 함께 찬란한 궁을 거닐고, 밤에는 숨소리조차 멎은 고요한 정원에서 몰래 산책을 즐겼더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기억은 어느 여름날, 형님과 함께 궁 밖으로 몰래 나온 밤 나들이였다.

 

"형님. 제가 형님 없이 어찌 살겠습니까?"

"바야짓. 나의 말을 듣거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가 나를 사랑하나 우리 두 사람의 몸은 서로의 것이 아니니라."

"어째서요?"

"우리가 왕의 피를 이었기 때문이다."

"형님과 헤어질 바에야 제가 왕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습니다."

"바야짓!"

 

호랑이 같은 형의 노성에 바야짓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바라반의 기개는 어른도 놀라게 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였다. 바야짓은 마치 심장에 얼음화살이 뚫고 온 몸에 뜨거운 물을 끼얹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실망했다. 너는 무즈라크의 왕자로서의 자각도 없었느냐!"

"...흑.."

"그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누구의 앞에 설 것이며 무엇을 이끌며 어떻게 살 셈이냐! 앞으로 날 형이라 부르지도 말아라!"

 

너무 무섭고 기가 막혀 눈물도 막혀버렸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라반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바야짓을 옆으로 눕혀 빠르게 심장을 압박하며 바야짓의 작은 코와 입을 모두 자신의 입으로 감싸고 세게 숨을 불어넣었다. 한참을 애를 사지를 떨고만 있던 아이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자 마자 바야짓은 형에게 버려질 것이란 공포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 생각하였으니 노여움을 푸세요."

"...."

"아버님의 명을 받들어 떠날게요.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형님..."

 

바야짓은 무슨 말이건 던지고 사과하고 울었다. 그렇게 조숙하던 자신은 어디로 가버리고 아기같이 투정하며 감정을 참을수 없는 천둥벌거숭이 아이 하나인 저만 남았다. 형님이 혹시 이 사방이 보이지도 않는 밤에 자신 혼자 버려둘 것 같은 공포에 바야짓은 바라반의 긴 상의에 매달려서 오돌오돌 떨며 울었다.

 

바야짓이 탈진했기에 결국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반은 바야짓을 업었다. 두 왕자 모두 가는 길엔 그렇게 정겹더니 오는 길엔 말이 없었다. 바야짓은 이것이 형님과의 마지막 밤일까 싶어 형의 등에 자라의 등껍질 처럼 달라붙었고, 바라반은 아직도 가볍기만한 동생이 안쓰러워 선뜻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그림자 무사들의 호위 속에 곧 몇 걸음만 걸으면 궁이었다. 바라반은 바야짓의 움직임이 없자 동생이 잔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내가 어린 너에게 독하게 군 것을 용서해라. 그러나 바야짓. 나는 네가 나의 동생이라 좋았다. 나는 나의 나라를 경애하며 나의 선조가 자랑스럽고 아바마마가 이룩한 그 모든 것을 경배한다. 그러니 부디 너는 왕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내가 사랑하는 네가 나라를 경히 여긴다면 이 형은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단다."

 

형님의 등은 마치 바다처럼 넓었고 태산처럼 강대하였으며 양털처럼 따뜻하였다.

바야짓은 무척이나 졸려서 자꾸만 눈이 감겼지만 형님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다. 형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것만 같았는데 너무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바야짓.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나를 사랑함 이상으로 이 나라를 사랑해다오."

 

바라반은 바야짓을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새근거리는 아이의 뺨과 이마에는 열이 올라 옅은 장미빛으로 아름답게 물이 들었다. 달빛이 바야짓의 얼굴에 깃털마냥 창백하게 내려앉아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평화로워 바라반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그리하면 내 몸이 네 곁에 없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히 네 옆에 있으리라."

"...약속...해요. 형.. 님..."

"바야짓?"

 

잠꼬대였을까. 바야짓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바라반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바야짓의 입술에 습기를 남겼다.

 

"그래. 이 나라가 멸망하는 날까지 맹세하마."

 

언약을 달이 보고 있었다.

 

 

 

 

 

 

 

 

 

공기가 움직인 것 같았다.

술탄 바야짓은 천천히 무거운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그리운 과거를 꿈으로 보았는데 오늘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보다는 그저 조금은 먹먹하고, 약간은 행복하기도 하였다.

 

-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나를 사랑함 이상으로 이 나라를 사랑해다오.

 

술탄 바야짓에게 무즈라크는 모든 것이다. 형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였고 그의 유언과 같은 비명은 다른 내용이었으나 결국 바야짓이 받아들인 형의 유언은 그를 위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바야짓은 천성도 연인같던 사랑도 건강도 포기했다. 전쟁이 마무리 된다면 자신은 후사를 위해 비를 들여야겠지. 아들을 가질 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나라의 아버지로서 한 여인의 지아비로서 살아야 할 것이다. 신관으로서 맹세한 정조 또한 국혼으로 깨질 것이다.

 

목이 마르다. 바야짓은 자리에 앉아 입술을 달짝였으나 오늘의 달밤에 갈증은 채워지지 않으리라.

바야짓은 천천히 침대를 나와, 형과 함께 걸었던 빈 복도를 거닐었다. 환청과 환시가 또다시 자신을 찾아올텐가. 중얼거리지만 약하게 시작되는 광증을 달랠 길을 찾지 못했다. 바야짓은 계속 중얼거렸다.  

 

형님. 몸도 마음도 당신도 당신이 원하였던 대로 나라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없고 제 마음은 피폐해지며 제 육체는 쇠약해집니다. 사방은 저를 고립하는 자들이요 당신의 소원하에 나라를 이끄는 제게 기쁨이 없으니 어찌합니까?

 

바야짓의 밤 산책은 길지 못하다. 술탄에겐 자유가 없다. 아무도 없는듯 보이는 이 복도에는 술탄을 지키기 위해 스물 이상의 군사들이 숨을 죽이고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게다. 마치 형님과 헤어지기 직전 거닐었던 그 여름밤처럼. 그 이전에도 형님이 몇번이고 이 입술을 빨고 침대에 오르던 것을 모두 알고도 묵과했던 자신의 방에서처럼.

 

결국 짧은 방황을 마치고 바야짓은 제 방으로 돌아갔다. 바야짓은 침대에 올라 그 옛날처럼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말아온채 눈을 감았다. 방도 같고 세월만 흘렀을 뿐인데 이제 자신을 달래줄 그 누구는 환청외에 남지를 않았다. 이별했던 그 밤의 감정과 같이 마음이 죄였다. 한 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으나 침대에 눕자마자 죽음같은 수마에 들어 바야짓은 이를 알지 못했다.

 

 

 

붉은 인영이 어른거리다 천천히 술탄 바야짓을 이불위에 포옹하듯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라의 이름이 멸할 때까지 붉은 왕자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켰다.

 

- 완 -

Posted by Karin(카린)
2014. 4. 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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