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9. 18:00

사쿤님이 그리셨던 마흐무트와 이스칸달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었습니다.

허락해 주신 사쿤님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그 날짐승은 제가 제 주인을 어머니로 인식하였다. 갓 알에서 깬 검둥수리에겐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손도 마치 신의 손길이라 여겼으리라. 따스하지만 실수가 많았던 열개의 손가락은 열심히도 꼬물거리며 삐약소리도 못내는 벌거숭이 병아리를 키워냈다. 어미잃은 알이라 소년의 어미가 걱정했지만 아이가 한시도 품에서 떼지 않았기에 그 아이는 제 주인의 어깨 이상으로 자라났다.

 

"산책시간인가. 잠시 다녀와, 이스칸달."

 

아직도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지시에 이제는 거대해진 이스칸달이 꽉 쥐어틀었던 주인의 어깨를 놔주며 어깨죽지를 편다. 돛과 같은 웅장한 깃털을 펼치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두번만 훼를 쳐도 묵직한 공기덩어리가 그 몸을 떠올렸다. 이제는 이스칸달이라 이름붙은 그는 제 핏줄이 하늘의 제왕의 증거 임을 안다. 위세할 필요는 없으나 과시않을 이유도 없다. 다 피면 장정의 키와 맞먹는 그 아름다운 갈빛의 날개를 내리 치자 얇은 아이의 어깨에서 발이 떠진다. 고개를 하늘로 고정한다. 몸이 뜨는 부유감이 기분좋다. 이를 아찔하게 여기는 이는 하늘을 누빌 자격이 없다.

 

멀리 작은 새들이 이스칸달의 등장에 겁을 먹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들은 이스칸달의 밑에 휘물아치는 공기의 압이 어찌나 강한지 알지 못하리라. 이 몸에 부딪치는 바람이 눈을 아릴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어찌하겠는가. 저들은 저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하늘에 오르는 순간 이 몸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한 자. 가히 왕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나 피를 보지 않은지 이틀이 지났다. 어깨죽지가 무엇 하나의 숨통을 끊으라며 어찌나 아우성을 치던지 날지 않은지 하루만에 이스칸달은 주인의 어깨 위에서 좀이 쑤셔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평지를 보자 까마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두세군데가 소란을 피우며 어지럽다. 하나는 기어다니는 것이요 둘은 제법 뛰는 것이다. 작은 놈을 포기하고 덩어리 큰 놈을 잡았다. 곧바로 하강하며 이스칸달이 칼날처럼 발을 세웠다. 그것이 뛴다. 지면에 부딪힐 것처럼 하강하자 연한 황갈색의 물체가 서둘러 굴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이스칸달은 알았다. 저것은 죽는다. - 그 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토끼는 이스칸달이 쥐어짜는 발톱의 힘에 절명했다.

 

 

쥐도 아니고 더럽혀지지도 않았다. 깨끗하게 숨을 거둔 토끼를 내려며 잠시 고민하다 이스칸달은 이제는 사물이 된 그것을 움켜잡고 제 작은 주인에게 돌아갔다. 공교롭게 쥔 토끼의 몸은 아직도 따뜻하여 작디작은 주인의 어깨가 생각났다. 서둘러 벌써 그리운 제 주인의 곁으로 날아들어갔다. 소년은 기쁘게 이스칸달을 맞이하며 자애로이 웃었다. 이스칸달을 위해 팔을 내주었지만 이스칸달은 앉지 않고 바닥에 조심스레 토끼부터 내려놓고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자리잡았다.

 

"사냥에 성공했니? 이스칸달."

 

주인은 바닥을 싫어하는 새의 습성을 잘 알아 곧바로 이스칸달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 몸을 제 몸 위로 올렸다. 이스칸달이 검둥수리치고도 제법 덩치가 있는데다 소년의 어깨가 아직 작아 남이 보면 숫제 새의 품에 소년이 안기는 격이었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품안에서 나는 좋은 향내를 맡으려다 제 몸이 높아져 더는 체취를 맡을수 없자 아쉬웠지만 크게 내색않고 얌전히 소년이 정해주는 위치대로 자세를 잡았다. 

 

마흐무트는 자랑스러운 파트너의 깃을 어루만졌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첫 정을 받은 형제였고 자식이었으며 검이었고 방패였다. 어찌나 수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는지 파샤의 앞에 이레 붙는 별칭으로 그는 검둥수리를 고집하였다. 이스칸달이 곧 마흐무트의 자부심이었으며 마흐무트가 곧 이스칸달의 모든 것이었다.

 

이스칸달이 날개도 피지 못한 시절 제 주인은 어미가 무참하게 윤간당해 죽어갈때도 소리한번 지르지 못하고 힉힉 거리며 제 손에서 잠든 더 어린 것만 쥐며 긴 밤을 새었다.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어 이를 악문 주인은 사람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칸달이 보기에도 독하게 제 자신을 몰아갔다. 많은 날이 있었다. 마흐무트의 맨 몸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이스칸달이다. 어떤 때는 긁힌 상처, 어느 날은 지독한 멍이 마흐무트의 여물지도 않은 몸에 끊일 날이 없었다. 이스칸달은 주인처럼 독해졌다. 다른 수리보다도 배는 먹고 주인이 지시하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그에게서 때지 않았다. 아침의 빛을 날개로 쳐 막고 밤의 이슬을 제 체온으로 식혀주었으나 이를 마흐무트가 아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인간의 시간과 동물의 시간은 다른가 보다. 이스칸달은 이미 다 컸는데도 마흐무트는 아직 다른 인간들 보다도 작았다. 그것이 마흐무트가 전장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될 리 만무했다. 이스칸달은 마흐무트가 보지 않을때도 제 부리와 발톱을 벼리고 깃을 다듬는다. 이제 어린 날 마흐무트의 손안에 크던 새끼새는 없다. 제가 날개가 되어 이젠 자신보다도 가녀린 주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스칸달."

 

이스칸달이 마흐무트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편다. 그 모습은 마치 마흐무트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뻗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전장을 누빈다. 소년이 검집에 손을 댐과 동시에 이스칸달이 소년의 몸에서 박차올랐다. 무엇을 하는지 지시하지 않아도 제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었다. 적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검고 흉학한 생물에 기세를 늦춘다. 그것이 수리였다는것을 알게 하기 전에 선봉의 시선을 흐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피냄새. 화약냄새. 비명과 금속음. 예민한 시각과 후각이 정보를 흐리기전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 인간의 욕망이 부딪힌다. 이스칸달이 보는 전쟁의 모습은 피식자도 포식자도 없이 그저 살고 싶은 자와 죽고 싶지 않은 자 외엔 없이 어지러이 엉켜있었다. 뒤로 돌아 주인에게 돌아간다. 이 혼란속에서 제 주인만의 소리만이 들린다. 제 주인의 존재만이 이스칸달의 몸을 이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리라는 소년의 확신이 마치 이스칸달이 점찍은 사냥감의 운명을 점쳤던 때마냥 선명해진다.

 

"다시, 가자. 이스칸달."

 

안다. 제 발톱으로도 꺾을수 있는 목과 채 발톱이 다 감기지도 않는 가녀린 몸을 하고도 이 소년은 아직도 자신의 신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검은 하늘의 왕은 인간의 싸움으로 뛰어든다. 제 주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검둥수리의 마흐무트 - 제 주인의 이름을 위하여.

Posted by Karin(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