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2. 22:54

슬레이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이 언제나 슬레이만 본인의 원대로 풀리지는 않았으나 가고 싶은 곳에 닿고 만나고 싶은 이를 접하며 수 많은 기회를 누렸다.

그의 누적된 불행의 값은 상상치 못할 눈덩이가 되어 슬레이만을 덮쳤다.

 

일족이 모두 살해된 날, 비보를 듣고 달려와도 이미 고향은 남은 것이 없었다. 슬레이만은 그 후 자신의 바닥을 보았다. 슬레이만이 가지고 있던 여유도 자신감도 모두 환상같은 것이었다. 술에 취해 폭력으로 시간을 낭비하였다. 누군가가 또렷하게 슬레이만에게 임무를 새겨넣어 주기 전까지 그는 그저 어둠이었다.

 

 

 

 

 

 

 

슬레이만은 실로 간만에 휴가를 받았다. 어린 연인과 함께 귀국한 것도 즐거운데 일도 없다니 흔하지 않다. 설마 엄격한 상관이 슬레이만과 마흐무트 파샤의 관계를 유추하고 배려해 준 것일까 생각했지만, 자가노스가 둘의 관계를 안다 할지라도 이렇게 일정을 맞춰 줄 리는 없었다. 순전, 행운이다. 슬레이만은 자가노스에게 보고를 마치자 마자 마흐무트의 집으로 향했다. 

 

휴일이라고 해서 딱히 할만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축제는 끝났고, 오늘은 시장이 서는 날이 아니며, 구경할 만한 곳으로 이동할 정도로 휴가를 길게 받은 것도 아니다. 방에만 있기에는 큐로스와 아빌리가의 눈초리가 사납다. 그들에게 슬레이만은 친하고 어린 동생을 낼름 삼킨 속이 새카만 양심없는 놈 이상도 이하도 아닐게다.

 

그러나 이 조건이 슬레이만 베이의 연애를 방해하기엔 슬레이만은 이미 경험이 풍부한 성인 남자였다. 슬레이만은 큐로스가 지키는 정문을 피해 마흐무트의 집 창문으로 접근했다. 아마 아빌리가가 봤을 테지만 모른척 해주리라. 잠겨진 유리창 정도는 열 수 있지만, 예의상 가볍게 노크를 하자 마흐무트가 바깥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한다.

 

"슬레이만 베이. 이곳은 문이 아닙니다."

"이해해줘. 네 부하 중에 무서운 까마귀가 있어서 말이야."

 

마흐무트는 한숨을 쉬면서도 슬레이만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자가노스 장군에게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고는 마쳤어."

"호오, 이렇게 빨리?"

"나는 능력있는 남자니까."

 

마흐무트는 이런 농담에 약하다. 슬레이만이 씩 웃어보이자 순간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한다. 귀여워라. 반응이 독해도 받아줄 수 있지만, 똑똑하고 순진하다는 양립이 불가능한 속성을 가진 연인이 귀여워 슬레이만은 마흐무트의 가녀린 금발을 슥슥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이 취급은..."

"그래, 하지 않는다고 했지."

 

슬레이만은 대신 마흐무트의 온 몸을 껴안았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마흐무트는 아이같았다. 뜨끈뜨끈하고 부드러운 체온이 기분좋다. 마흐무트도 슬레이만의 등에 팔을 돌렸다. 잠시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였다.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묵직하고, 살내음이 퍼진다. 이 순간 각자의 이름이 아니라 그 감각들이 모여 서로가 된다. 감촉이 심장을 따뜻하게 뎁혔다. 슬레이만은 자신 쪽에서 어리광을 부리듯 마흐무트의 몸 속으로 좀더 파고들었다. 마흐무트는 천천히 슬레이만의 등을 쓸었다. 

 

Posted by Karin(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