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신 주의!!!
이스칸달 의인화(키몽님 디자인)x마흐부트 입니다.
장알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커플이라 즐겁게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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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쿤님이 그리셨던 마흐무트와 이스칸달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었습니다.
허락해 주신 사쿤님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그 날짐승은 제가 제 주인을 어머니로 인식하였다. 갓 알에서 깬 검둥수리에겐 열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손도 마치 신의 손길이라 여겼으리라. 따스하지만 실수가 많았던 열개의 손가락은 열심히도 꼬물거리며 삐약소리도 못내는 벌거숭이 병아리를 키워냈다. 어미잃은 알이라 소년의 어미가 걱정했지만 아이가 한시도 품에서 떼지 않았기에 그 아이는 제 주인의 어깨 이상으로 자라났다.
"산책시간인가. 잠시 다녀와, 이스칸달."
아직도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지시에 이제는 거대해진 이스칸달이 꽉 쥐어틀었던 주인의 어깨를 놔주며 어깨죽지를 편다. 돛과 같은 웅장한 깃털을 펼치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두번만 훼를 쳐도 묵직한 공기덩어리가 그 몸을 떠올렸다. 이제는 이스칸달이라 이름붙은 그는 제 핏줄이 하늘의 제왕의 증거 임을 안다. 위세할 필요는 없으나 과시않을 이유도 없다. 다 피면 장정의 키와 맞먹는 그 아름다운 갈빛의 날개를 내리 치자 얇은 아이의 어깨에서 발이 떠진다. 고개를 하늘로 고정한다. 몸이 뜨는 부유감이 기분좋다. 이를 아찔하게 여기는 이는 하늘을 누빌 자격이 없다.
멀리 작은 새들이 이스칸달의 등장에 겁을 먹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그들은 이스칸달의 밑에 휘물아치는 공기의 압이 어찌나 강한지 알지 못하리라. 이 몸에 부딪치는 바람이 눈을 아릴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어찌하겠는가. 저들은 저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하늘에 오르는 순간 이 몸은 가장 높고 가장 귀한 자. 가히 왕이다. 배가 고프지 않으나 피를 보지 않은지 이틀이 지났다. 어깨죽지가 무엇 하나의 숨통을 끊으라며 어찌나 아우성을 치던지 날지 않은지 하루만에 이스칸달은 주인의 어깨 위에서 좀이 쑤셔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평지를 보자 까마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두세군데가 소란을 피우며 어지럽다. 하나는 기어다니는 것이요 둘은 제법 뛰는 것이다. 작은 놈을 포기하고 덩어리 큰 놈을 잡았다. 곧바로 하강하며 이스칸달이 칼날처럼 발을 세웠다. 그것이 뛴다. 지면에 부딪힐 것처럼 하강하자 연한 황갈색의 물체가 서둘러 굴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이스칸달은 알았다. 저것은 죽는다. - 그 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토끼는 이스칸달이 쥐어짜는 발톱의 힘에 절명했다.
쥐도 아니고 더럽혀지지도 않았다. 깨끗하게 숨을 거둔 토끼를 내려며 잠시 고민하다 이스칸달은 이제는 사물이 된 그것을 움켜잡고 제 작은 주인에게 돌아갔다. 공교롭게 쥔 토끼의 몸은 아직도 따뜻하여 작디작은 주인의 어깨가 생각났다. 서둘러 벌써 그리운 제 주인의 곁으로 날아들어갔다. 소년은 기쁘게 이스칸달을 맞이하며 자애로이 웃었다. 이스칸달을 위해 팔을 내주었지만 이스칸달은 앉지 않고 바닥에 조심스레 토끼부터 내려놓고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며 자리잡았다.
"사냥에 성공했니? 이스칸달."
주인은 바닥을 싫어하는 새의 습성을 잘 알아 곧바로 이스칸달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 몸을 제 몸 위로 올렸다. 이스칸달이 검둥수리치고도 제법 덩치가 있는데다 소년의 어깨가 아직 작아 남이 보면 숫제 새의 품에 소년이 안기는 격이었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품안에서 나는 좋은 향내를 맡으려다 제 몸이 높아져 더는 체취를 맡을수 없자 아쉬웠지만 크게 내색않고 얌전히 소년이 정해주는 위치대로 자세를 잡았다.
마흐무트는 자랑스러운 파트너의 깃을 어루만졌다.
이스칸달은 소년의 첫 정을 받은 형제였고 자식이었으며 검이었고 방패였다. 어찌나 수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는지 파샤의 앞에 이레 붙는 별칭으로 그는 검둥수리를 고집하였다. 이스칸달이 곧 마흐무트의 자부심이었으며 마흐무트가 곧 이스칸달의 모든 것이었다.
이스칸달이 날개도 피지 못한 시절 제 주인은 어미가 무참하게 윤간당해 죽어갈때도 소리한번 지르지 못하고 힉힉 거리며 제 손에서 잠든 더 어린 것만 쥐며 긴 밤을 새었다.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어 이를 악문 주인은 사람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스칸달이 보기에도 독하게 제 자신을 몰아갔다. 많은 날이 있었다. 마흐무트의 맨 몸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이스칸달이다. 어떤 때는 긁힌 상처, 어느 날은 지독한 멍이 마흐무트의 여물지도 않은 몸에 끊일 날이 없었다. 이스칸달은 주인처럼 독해졌다. 다른 수리보다도 배는 먹고 주인이 지시하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그에게서 때지 않았다. 아침의 빛을 날개로 쳐 막고 밤의 이슬을 제 체온으로 식혀주었으나 이를 마흐무트가 아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인간의 시간과 동물의 시간은 다른가 보다. 이스칸달은 이미 다 컸는데도 마흐무트는 아직 다른 인간들 보다도 작았다. 그것이 마흐무트가 전장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될 리 만무했다. 이스칸달은 마흐무트가 보지 않을때도 제 부리와 발톱을 벼리고 깃을 다듬는다. 이제 어린 날 마흐무트의 손안에 크던 새끼새는 없다. 제가 날개가 되어 이젠 자신보다도 가녀린 주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가자. 이스칸달."
이스칸달이 마흐무트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편다. 그 모습은 마치 마흐무트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뻗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전장을 누빈다. 소년이 검집에 손을 댐과 동시에 이스칸달이 소년의 몸에서 박차올랐다. 무엇을 하는지 지시하지 않아도 제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수 있었다. 적들은 빠르게 다가오는 검고 흉학한 생물에 기세를 늦춘다. 그것이 수리였다는것을 알게 하기 전에 선봉의 시선을 흐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피냄새. 화약냄새. 비명과 금속음. 예민한 시각과 후각이 정보를 흐리기전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 인간의 욕망이 부딪힌다. 이스칸달이 보는 전쟁의 모습은 피식자도 포식자도 없이 그저 살고 싶은 자와 죽고 싶지 않은 자 외엔 없이 어지러이 엉켜있었다. 뒤로 돌아 주인에게 돌아간다. 이 혼란속에서 제 주인만의 소리만이 들린다. 제 주인의 존재만이 이스칸달의 몸을 이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리라는 소년의 확신이 마치 이스칸달이 점찍은 사냥감의 운명을 점쳤던 때마냥 선명해진다.
"다시, 가자. 이스칸달."
안다. 제 발톱으로도 꺾을수 있는 목과 채 발톱이 다 감기지도 않는 가녀린 몸을 하고도 이 소년은 아직도 자신의 신인 것이다. 그러니 다시 검은 하늘의 왕은 인간의 싸움으로 뛰어든다. 제 주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검둥수리의 마흐무트 - 제 주인의 이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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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짓이 술탄의 자리에 오른지 1년이 지났다. 나라의 주인은 드높은 이름만큼이나 거대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바야짓은 평생에 걸쳐 제 2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 술탄의 제위에 올랐기에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지 결국은 몸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유난히 일어날 때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어느날, 바야짓은 모든 중신들이 모인 아침의 회의시간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금방 기운을 차리기는 했으나 바야짓의 얼굴이 창백하고 온 몸에서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기에 혼비백산한 대신들은 서둘러 궁의를 호출하였다. 바야짓은 소란을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최근 자신의 몸은 신관으로서 지내던 그 날에 비해 무척이나 쇠약해졌기에 치료를 물리지 않았다.
"왕의 용태는 어떠하십니까."
"가벼운 체증과 어지러움증은 금방 나을 것입니다만, 두통과 간헐적인 사지의 마비는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기에 쉬이 잡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술탄의 근심이 줄어들어야지만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바야짓의 눈이 흐려졌다. 왕의 생각을 눈치가 빠른 이들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형님이라면 이보다 더 하신 상황에서도 거뜬하셨을 테지.
그리움은 찰나였다. 바야짓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바야짓은 대신들의 쪽을 보았다.
"이 몸은 나라의 것. 걱정을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건강에 신경을 쓰겠습니다."
엄숙한 왕의 명에 대신들은 모두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으나 바야짓의 시선은 그들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뒤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지는 붉은 인영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올릴수 있는 기억이 있다. 그 날은 바야짓이 물의 도시로 가는 것이 확정된 날이었을게다. 그날 바야짓은 평소처럼 형님인 바라반의 곁에서 책을 읽으며 형님이 제 1왕자로서 받는 교육을 홀낏거리며 보고 있었다. 어린 바야짓이 보기에도 바라반은 진정한 왕의 그릇이었다. 바라반은 무즈라크라는 국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고, 군사와 무역 뿐 아니라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다. 바야짓이 모르는 모든 것은 바라반이 알고 있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였기에 바야짓에게는 바라반이 제 2의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형과 헤어진다는 것이 결정된 날이 어찌나 슬펐는지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형을 보고 있었는데 아바마마가 찾으셔서 치장을 했던 기억. 형님의 얼굴이 쓸쓸해 보이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어 그가 무척이나 낯설었던 기억. 혹시 모를 화를 피하기 위하여 국법에 따라 각 왕위 계승자는 다른 지역에 있어야 하며 이제 바야짓이 궁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을 때의 충격. 부모와 떨어지는 것보다 사랑하는 형을 영영 볼수 없을 것 같던 슬픔에 눈물을 멈출수 없던 자신. 그런 소동을 알고도 찾아오지 않았던 형.
어린 나이에도 조숙하다고 칭찬을 듣던 바야짓이었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바야짓 자신이 생각해도 걱정이 될 정도로 오열을 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몇 시진을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낮에도 들리지 않던 형님은 밤에 조심스레 울다 지친 자신의 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주고 손수 꿀물을 입에 물리며 간호를 했더랬다. 신기하게도 눈이 가려져 보이지도 않던 바야짓은 아직 어른이 아니라 서툰 손길을 느끼고 형이라 확신했는지 곧바로 그에게 질문을 했다.
"형님은 제가 떠난다는데 슬프지도 않으신가요?"
"슬프지만 나라의 법이다."
"저는 싫습니다. 평생 형님의 곁에만 있고 싶습니다."
"걱정 말아라. 네가 자라면 네가 싫대도 내 곁에만 둘 것이다."
낮에는 그리 찾아도 오지 않더니 밤에는 어찌나 형님의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달콤하던지 바야짓의 눈에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차올랐다. 어린 가슴이 바르르 떨리다 다시금 흐느낌을 멈추지 않자 바라반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야짓의 심장 위에 올린후 도닥도닥 동생을 진정시켜 주었다.
"흑... 흑... 떠나는 것은 싫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괴롭습니다."
"울지 말아라."
쉽게 동생이 진정하지 않자 바라반이 침대 위에 올라와 이불째 바야짓을 끌어안고 드러난 바야짓의 이마에 입술을 맞대었다. 조금씩 떨림이 가라앉자 바라반이 조용히 동생을 타이르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라. 평생 헤어지는 것이 아니잖니."
"형님은 제가 눈에 안보이면 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일만 하실 것 같습니다."
"내 가족중에 어머니보다도 아버지 보다도 사랑하는 것이 너이다. 그런 일은 없다."
"형님이 고은 신부를 맞이하면 말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난 장가를 들면 안되겠구나. 나는 왕자를 낳아야 하는데 큰일이 났어."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야짓은 대꾸를 하지 않고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대었다. 바라반은 동생의 질투에 파안하며 다시 한번 동생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제가 형님 신부역까지 할테니 결혼을 하지 마세요."
"고약한 동생이로군."
"언제는 저보다 고운 여인이 없다며 절 희롱하며 부끄럽게 하시더니 너무하십니다."
"네 말이 맞다. 바야짓. 네 고은 얼굴이 보고 싶다. 얼굴을 보여다오."
그 말에 바야짓이 머뭇거렸다. 왜 그러냐고 묻자 얼굴이 흉할까 두렵다고 대답했다. 네가 미워보인 적이 한번도 없으니 살살 달래자 잔뜩 헝크러진 고슬머리의 아이가 심히 장관인 꼴을 하고 빼꼼 얼굴을 내민다. 도깨비같다고 놀리려다 연장자로서 마음을 고치고 바라반은 곱다며 동생의 얼굴 전체에 입술의 비를 내렸다.
바야짓이 떠나기 전날까지 형제는 완전히 밀착하여 지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형제애가 돈독하였고 석별의 정이 각고하였기에 술탄은 딱히 둘을 나무래지 않았다. 바야짓은 형의 목소리로 잠에서 깨고 형의 자장가로 잠자리에 들었다. 숨을 쉬듯 서로의 시간에 서로를 세겼다. 낮에는 형과 함께 찬란한 궁을 거닐고, 밤에는 숨소리조차 멎은 고요한 정원에서 몰래 산책을 즐겼더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기억은 어느 여름날, 형님과 함께 궁 밖으로 몰래 나온 밤 나들이였다.
"형님. 제가 형님 없이 어찌 살겠습니까?"
"바야짓. 나의 말을 듣거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가 나를 사랑하나 우리 두 사람의 몸은 서로의 것이 아니니라."
"어째서요?"
"우리가 왕의 피를 이었기 때문이다."
"형님과 헤어질 바에야 제가 왕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습니다."
"바야짓!"
호랑이 같은 형의 노성에 바야짓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바라반의 기개는 어른도 놀라게 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였다. 바야짓은 마치 심장에 얼음화살이 뚫고 온 몸에 뜨거운 물을 끼얹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실망했다. 너는 무즈라크의 왕자로서의 자각도 없었느냐!"
"...흑.."
"그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누구의 앞에 설 것이며 무엇을 이끌며 어떻게 살 셈이냐! 앞으로 날 형이라 부르지도 말아라!"
너무 무섭고 기가 막혀 눈물도 막혀버렸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라반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바야짓을 옆으로 눕혀 빠르게 심장을 압박하며 바야짓의 작은 코와 입을 모두 자신의 입으로 감싸고 세게 숨을 불어넣었다. 한참을 애를 사지를 떨고만 있던 아이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자 마자 바야짓은 형에게 버려질 것이란 공포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 생각하였으니 노여움을 푸세요."
"...."
"아버님의 명을 받들어 떠날게요.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형님..."
바야짓은 무슨 말이건 던지고 사과하고 울었다. 그렇게 조숙하던 자신은 어디로 가버리고 아기같이 투정하며 감정을 참을수 없는 천둥벌거숭이 아이 하나인 저만 남았다. 형님이 혹시 이 사방이 보이지도 않는 밤에 자신 혼자 버려둘 것 같은 공포에 바야짓은 바라반의 긴 상의에 매달려서 오돌오돌 떨며 울었다.
바야짓이 탈진했기에 결국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반은 바야짓을 업었다. 두 왕자 모두 가는 길엔 그렇게 정겹더니 오는 길엔 말이 없었다. 바야짓은 이것이 형님과의 마지막 밤일까 싶어 형의 등에 자라의 등껍질 처럼 달라붙었고, 바라반은 아직도 가볍기만한 동생이 안쓰러워 선뜻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그림자 무사들의 호위 속에 곧 몇 걸음만 걸으면 궁이었다. 바라반은 바야짓의 움직임이 없자 동생이 잔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내가 어린 너에게 독하게 군 것을 용서해라. 그러나 바야짓. 나는 네가 나의 동생이라 좋았다. 나는 나의 나라를 경애하며 나의 선조가 자랑스럽고 아바마마가 이룩한 그 모든 것을 경배한다. 그러니 부디 너는 왕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내가 사랑하는 네가 나라를 경히 여긴다면 이 형은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단다."
형님의 등은 마치 바다처럼 넓었고 태산처럼 강대하였으며 양털처럼 따뜻하였다.
바야짓은 무척이나 졸려서 자꾸만 눈이 감겼지만 형님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다. 형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것만 같았는데 너무나도 졸음이 쏟아졌다.
"바야짓.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나를 사랑함 이상으로 이 나라를 사랑해다오."
바라반은 바야짓을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새근거리는 아이의 뺨과 이마에는 열이 올라 옅은 장미빛으로 아름답게 물이 들었다. 달빛이 바야짓의 얼굴에 깃털마냥 창백하게 내려앉아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평화로워 바라반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그리하면 내 몸이 네 곁에 없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히 네 옆에 있으리라."
"...약속...해요. 형.. 님..."
"바야짓?"
잠꼬대였을까. 바야짓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바라반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바야짓의 입술에 습기를 남겼다.
"그래. 이 나라가 멸망하는 날까지 맹세하마."
언약을 달이 보고 있었다.
공기가 움직인 것 같았다.
술탄 바야짓은 천천히 무거운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그리운 과거를 꿈으로 보았는데 오늘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보다는 그저 조금은 먹먹하고, 약간은 행복하기도 하였다.
-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나를 사랑함 이상으로 이 나라를 사랑해다오.
술탄 바야짓에게 무즈라크는 모든 것이다. 형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제대로 된 대화도 못하였고 그의 유언과 같은 비명은 다른 내용이었으나 결국 바야짓이 받아들인 형의 유언은 그를 위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바야짓은 천성도 연인같던 사랑도 건강도 포기했다. 전쟁이 마무리 된다면 자신은 후사를 위해 비를 들여야겠지. 아들을 가질 때까지, 아니 그 후에도 나라의 아버지로서 한 여인의 지아비로서 살아야 할 것이다. 신관으로서 맹세한 정조 또한 국혼으로 깨질 것이다.
목이 마르다. 바야짓은 자리에 앉아 입술을 달짝였으나 오늘의 달밤에 갈증은 채워지지 않으리라.
바야짓은 천천히 침대를 나와, 형과 함께 걸었던 빈 복도를 거닐었다. 환청과 환시가 또다시 자신을 찾아올텐가. 중얼거리지만 약하게 시작되는 광증을 달랠 길을 찾지 못했다. 바야짓은 계속 중얼거렸다.
형님. 몸도 마음도 당신도 당신이 원하였던 대로 나라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없고 제 마음은 피폐해지며 제 육체는 쇠약해집니다. 사방은 저를 고립하는 자들이요 당신의 소원하에 나라를 이끄는 제게 기쁨이 없으니 어찌합니까?
바야짓의 밤 산책은 길지 못하다. 술탄에겐 자유가 없다. 아무도 없는듯 보이는 이 복도에는 술탄을 지키기 위해 스물 이상의 군사들이 숨을 죽이고 이곳을 주시하고 있을게다. 마치 형님과 헤어지기 직전 거닐었던 그 여름밤처럼. 그 이전에도 형님이 몇번이고 이 입술을 빨고 침대에 오르던 것을 모두 알고도 묵과했던 자신의 방에서처럼.
결국 짧은 방황을 마치고 바야짓은 제 방으로 돌아갔다. 바야짓은 침대에 올라 그 옛날처럼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말아온채 눈을 감았다. 방도 같고 세월만 흘렀을 뿐인데 이제 자신을 달래줄 그 누구는 환청외에 남지를 않았다. 이별했던 그 밤의 감정과 같이 마음이 죄였다. 한 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으나 침대에 눕자마자 죽음같은 수마에 들어 바야짓은 이를 알지 못했다.
붉은 인영이 어른거리다 천천히 술탄 바야짓을 이불위에 포옹하듯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라의 이름이 멸할 때까지 붉은 왕자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켰다.
- 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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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대체 왜 그렸더라(먼산)
배경 있는 버젼! 쿵짝쿵짝 뚜루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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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님과 이야기 하다가 나온 우주머리 바야짓
갤럭시 바라반. 배경에 뭔가 흩날리는건 깃털입니다!
수채화 - 바야짓과 알샤칼 (0) | 2014.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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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춤 추는 피노 장군 (0) | 2014.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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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의 알타이르 2차 정모 (약간 뒤조심 포함) (0) | 2014.03.23 |